실락원 #죽음에 관한 일본의 낭만성에 대한 해석 #야쿠쇼 코지

 

 

 

失樂園, 1997

 

 

  실락원 출연진

구키 쇼이치로 / 야쿠쇼 코지
마쓰바라 린코 / 쿠로키 히토미

 

구키 후미에 / 호시노 도모코
딸, 구키 치카 / 기무라 요시노
마쓰바라 하루히코 / 시바 토시오

기누가와 / 테라오 아키라
미즈구치 / 이노우에 하지메
미도리 / 김구미자

감독 / 모리타 요시미츠
원작 / 와타나베 준이치 <실락원>

 

 

 


 

실락원 줄거리 정보

 

워커홀릭으로 평생을 편집일에 바쳤지만 매출이 떨어져 좌천된 출판사의 전 편집장인 50세 구키 쇼이치로(야쿠쇼 코지)는 친구 기누가와(테라오 아키라)와의 술자리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38세 미모의 여선생을 '해서체 여인'이라 부르며 마쓰바라 린코(쿠로키 히토미)에 대해 마음대로 떠들어댄다. 그도 몰랐던 것이 린코와 구키는 이미 불륜관계로 정을 통하고 있었던 것. 

구키와 린코는 가정을 속이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져만 가던 중, 린코의 친구 이혼녀 미도리(김구미자)의 입방정 때문에 두 사람의 불륜관계가 기누가와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설상가상 린코의 불륜을 의심하던 의사 남편 하루히코(시바 토시오)에게 뒷조사 당해 둘의 밀회는 들통난다.

 

 

 

 


린코의 남편은 자신이 알게 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구키의 직장과 아내에게까지 이와 같은 사실을 폭로한다. 정숙한 유부녀를 희롱해 한가정을 파탄 냈다는 오명과 불륜남 딱지가 씌워진 구키는 또 한 번의 좌천인사를 상사에게 제안받지만 자신 퇴사해버린다. 사실을 알게 된 아내 후미에(호시노 도모코)는 이혼을 요구하고 결혼한 딸 치카(기무라 요시노)는 부모의 이혼에 성숙한 태도를 보인다. 

린코의 남편은 아내가 가정으로 돌아오길 바랐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친정어머니에게 불륜사실을 털어놓게 되고 질책과 동시에 의절당하기에 이르면서 두 사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변정리가 된다. 

 

 

 

 


암 발병으로 향후 계획이 모두 틀어진 능력 있는 직장동료 미즈구치(이노우에 하지메)의 병문안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을 밥 기다리는 시간에 비유한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의 수필 마지막 구절을 구키에게 읊어주던 그는 세상을 등지게 되고 구키의 가슴속에는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자리한다. 

마지막 여행길을 떠나게 된 구키와 린코, 둘만의 추억의 음식인 오리 물냉이 전골과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마친 뒤 서로 몸을 포갠 채 음독자살에 이른다.

 

 

 


 

영화 실락원 속 단어 해석과 각주

 

 

  카모나베(鴨鍋)

린코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둘이 함께 먹은 최후의 식사.

 

'오리 물냉이 전골'이라고 번역되는 음식의 정체는 카모나베로 직역하면 오리냄비, 오리전골로 우스구치 간장 국물에 배추와 표고버섯, 오뎅, 두부, 물냉이(크레숑), 청경채 등을 넣고 오리고기를 넣어먹는 전골로 가정식 요리다.

 

 

 

 

 

 다키기노(薪能)
극 중에서 둘이 함께 관람한 것은 노가쿠(일본 전통 가면극)이다.

다키기노(장작) 소재로 화톳불을 무대에 피워놓고 무사, 광대 등이 출연하고 풍자와 한이 섞인 전통 마당놀이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샤또 마고(Château Margaux)
세컨드 룸 밀회장소에서 구키가 린코에게 가져다준 와인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

 

영화 실락원의 인기로 일본 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아졌고 설익은 빈티지의 경우에도 젊은 셀러리맨 한 달치 월급 정도로 값이 매우 비싼 편이라고. 이 영화로 인해 지금까지도 중년들 사이에서는 샤또 마고를 주고받는 일이 외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베 사다를 논하는 장면

 


  마사오카 시키
병상에 있던 동료 미즈구치가 구키에게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을 밥 기다리는 시간에 비유하며 "다다미 위로 눈부신 햇살이 비쳤다. 밥이 왔다."라는 대사를 읊조린다. 여기에서 언급된 시키는 '마사오카 시키'로 35세에 결핵으로 요절한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을 말한다. 

 

오랜 투병생활을 했지만 병상에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고 실락원에서 대사로 등장한 마사오카 시키의 수필은 그의 병상일지인 <병상육척>의 마지막 구절로 '밥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하이쿠(일본 전형시)로 추정된다. 

 

 

1976년 영화 감각의 제국

 


  아베 사다 사건
쇼와시대 역사편찬 일을 맡은 구키가 직장동료들과의 대화 중에 아베 사다 사건을 언급한다.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아베 사다라는 여성이 내연남과 밀회 중 교살한 뒤 성기를 절단하여 체포된 사건으로 워낙에 자극적이고 센세이션한 사건이다 보니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다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낙원>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감각의 제국(사랑의 코리다), 1976>이다. 

 

 


 

죽음에 관한 낭만성의 몰이해가 낳는
어리둥절한 결말

 

 

영화 <실락원>의 영제는 Paradise Lost. '잃어버린 낙원'으로 표기해도 두음법칙으로도 존 밀턴의 서사시에 빗대도 '실낙원'이 옳지만 한국어로는 실락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일.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당시 문화개방 이후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 2004>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쟈니스 아이돌 V6의 멤버 오카다 준이치의 극 중 엄마 동창이자 불륜 상대로 구로키 히토미가 상당히 고운 자태로 등장하는데 이전에 이미 불륜 소재인 이 영화로 열도 내에 한차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인물이라 주워듣게 되면서였다. 심지어 상대역이 구로사와 기요시의 페르소나 야쿠쇼 코지라니! 

게다가 동일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한국영화도 있다. 주연은 프란체스카 심혜진 여사와 중년배우 이영하 씨인데 대체 실락원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리메이크를 바로 딸 정도일까 싶었으나 당시 감상평은 더럽게 재미없는 수준 미달의 괴작이라 느꼈을 정도. 솔직히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하품유발작으로 매한가지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의 의도에 관한 이해도' 부분일 것이다.

 

 

 

 


뼛속까지 K로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갬성의 영역이지만 J에는 죽음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죽을 것을 뻔히 알고도 적진으로 돌진하는 반자이 도쓰게키(반자이 돌격)라는 것은 K나 월드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심히 무모하고 어리둥절한 일이지만 J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상황에서 이 한목숨을 바치는 일은 숭고한 죽음으로써 여기는 문화인 것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 그의 제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이 그럴 것이고 현대에서도 일본의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법은 결연한 의지를 증명하는 일로 표현된다. 

구키는 반강제로 이혼당했고 린코도 집을 떠나 자유의 몸이 되어 둘이 짝짜꿍 영사하면 그만인 것인데 왜 굳이 음독자살을 택했나 실락원의 결말이 어리둥절한 이유가 바로 일본 특유의 죽음에 관한 낭만성에 대한 몰이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 것이다. 

사무라이들의 종특인 추신구라(에도막부 할복)의 명예자결 방식이 그들의 증신세계에 뿌리 박혀 있다면 가능할법한 스토리.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그들이 불멸의 사랑을 택한 방법으로 내장에 쏟아져 나와야 끝이 나는 할복이 아닌 다소 우아한 현대판 죽음의 방식으로 음독자살을 택했고(그것도 값비싼 프랑스 와인과 곁들여) 아베 사다 사건에 아이디어를 얻은 사후강직 합체 로봇이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닐는지.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건 흡연 탓인가

 

중년을 위한 ロマンポルノ

 

178cm로 일본인 평균 신장보다 훨씬 크고 50세 역할임에도 다부진 몸매를 자랑하는 야쿠쇼 코지, 극 중 구키의 와꾸가 그러한데 1997년 야쿠쇼 코지는 41세로(1956년생) 촬영 당시엔 더욱이 젊었을 테지만 흰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포스를 지대로 풍기는 것이 21세기에는 몹시 낯설다. 

41세면 강동원, 김남길, 김래원, 조인성, 이진욱 배우의 연세인 것인데(...) 결이 흡사한 외모의 현재 지천명을 넘긴 감우성 배우와 비교해봐도 97년의 마흔 살 야쿠쇼 코지 쪽이 훨씬 늙수구레 하다. 극 중 띠동갑을 맡았지만 고작 4살 차이로 1960년생인 쿠로키 히토미는 제 나이에 맡는 역을 맡았다.

 

 

 

 


쿠로키 히토미는 선이 가늘고 일본 특유의 단정한 미인으로 리얼하게 묘사된 농도 짙은 애정연기는 반전을 더해 더욱이 사실적으로 농염하게 보이게 하는 면이 있다. 쉽게 말해 눈 돌아가게 아름다워서 중년 남성으로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대상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대들의 찐첫사랑은 수지의 미모가 아니듯이 이거슨 교묘한 페이크.

개인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중년을 위한 로망포르노에 가깝다.

스타일링이나 촬영방식, 모든 것이 평범해서 극사실주의 같은 표현방식이지만 바람 펴도 극딜하지 않는 고상한 아내와 이해심 뻐렁치는 딸, 불륜이 발각되고도 수군대지 않는 주변의 공기, 퇴직중년을 위한 능력자 인맥의 일자리 선제안, 문인들의 쿠세 가득 찬 하이쿠 남발, 로맨스를 위한 세컨드 홈 게다가 도쿄멘숀, 고급 와인에 고결한 죽음까지 리얼리티와 로망 사이에서 취사선택된 것들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껄껄 헛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료깐S 로망 실현 따위가 그렇다

 

 

이 영화를 로망이 아닌 리얼리티 관점에서 홍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해주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