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 해석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Pi, 1998

 

 

파이 출연진

 

맥시밀리안 코엔(맥스 코엔) 역 / 숀 걸릿

 

솔 로벤손 역 / 마크 마르골리스

 

레니 마이어 역 (유대인 유대교 신자) / 벤 셍크만
파멜라 하트 역 (예상 전략 회사 란셋-퍼시의 파트너) / 마시 도슨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파이> 1998년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데뷔작이다.

 

각본 / 대런 아로노프스키, 숀 걸릿(주연 배우)
숀 걸릿과는 차기작 <레퀴엠, 2000>에서도 함께 했다.

 

 

 

 

영화 파이 줄거리 정보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유대인 천재 수학자 맥시밀리안 코엔(숀 걸릿). 그는 이름난 저명한 수학자로 6살 때부터 두통을 안고 살아가는 탓에 다소 히스테릭하고 사회성 재기한 인물이다.

인간군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는 코엔이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은 '숫자'로 세상사 모든 이치는 특정 숫자의 패턴에 달려있다 추정한다. 근거는 아래와 같다.

  코엔의 수학적 추론
1. 수학은 자연의 언어다. 
2.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 
3. 체계를 막론하고 숫자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패턴이 나타난다. 따라서 자연 어디에나 패턴이 존재한다. 
그 증거로 전염병 사이클, 카리부 인구의 증감, 태양의 흑점 사이클, 나일강 간만. 그리고 주식 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천재 수학자 코엔이 숫자의 패턴을 알아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발 빠르게 눈치챈 두 집단이 있다. 한쪽은 유대교 신자 레니 마이어(벤 셍크만)로 대변되는 종교 집단과 또 다른 쪽은 예상 전략 회사 란셋-퍼시의 파트너 파멜라 하트(마시 도슨)로 대변되는 주식 시장이다. 

월가 주식시장과 유대교 카발라. 이 두 집단에서는 코엔을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반면 은퇴한 코엔의 스승 솔 로벤손(마크 마르골리스)은 216자리 숫자의 패턴을 연구하는 일에 대해 우연일 뿐이고 하등 쓸모없는 일이라면서 논리를 설파하는 제자를 묵살한다. 

 

 

 

 


이름 모를 침입자에 대한 경계태세가 높아지면서 코엔의 히스테릭과 환각은 점차 심화되는데 자신의 머릿속에 패턴이 심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뒤 삭발을 감행한다. 

주식시장의 파멜라와 거래를 튼 이후 일부 코드만 알려줘 시장질서를 교란시킨 꼴이 되자 겁박당하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유대교 신자 레니 마이어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레니의 스승 랍비 코엔(동명의 성을 가진 종교지도자)의 목적 역시도 신의 곁에 다가가기 위해 216자리 숫자의 패턴이 필요했을 뿐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뒤늦게 스승 솔을 찾아가지만 그는 뇌졸중으로 이미 세상을 뜬 이후다. 솔의 집에서 216 코드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코엔은 다시 한번 환각을 경험하며 공포에 휩싸여 폭주하게 되고 세상에서 숫자의 흔적을 없앤 뒤 드릴로 좌뇌를 뚫어버린다.

이후 이웃에 사는 중국 소녀가 계산기로 내는 간단한 곱셈에도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수학자로서 모든 것을 망각한다. 

 

 

 

 

 

영화 파이 해석

 

 

선택받은 자

 

어릴 때 엄마는 내게 해를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6살이 됐을 때 해를 쳐다봤다. 의사는 내 눈이 나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난 경악했다. 어둠 속에 혼자 있어야 한다니... 천천히 붕대 틈으로 빛이 기어들어 왔다. 시력은 회복되었지만 다른 무언가가 내 안을 변화시켰다. 바로 그날 두통은 시작됐다.

'엄마는 해를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로 시작되는 이 대사가 영화 중간중간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해는 신을 뜻하며 '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조언이자 경고로 엄마는 스승 솔과 같은 현자 혹은 조언자로 읽힌다. 

 

 

 

 


그러나 코엔은 이를 어기며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를 자청해 신을 기만했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행위의 대가로 두통이 시작된 것. 노한 신이 내린 징벌 같은 것이다.

216자리 코드는 자연의 법칙을 말하고 코드에 가까워질수록, 즉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시도를 감행할수록 두통을 넘어 환영에 시달릴 정도로 고통당한다. 

왜 하필 6살인가 싶긴 한데 대부분의 수학 영재들이 유아기(만 6세 이하)를 지나 유년기(보통 만 7~8세)에 들어서는 그 시기쯤 영재성이 발현되기 때문이 아닐지 싶다. 꼭 영재로 놓고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피력할 수 있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카발라와 월스트리트


  카발라 - 근본주의

카발라는 유대교에서 모세와 솔로몬을 시조로 유대인끼리 구전으로 전승하는 신비교의를 뜻한다. 이는 토라 연구와 관련이 있는데 토라는 기독교에서 구약 중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유대교에서 꾸준히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다. 

영화 <파이> 속 랍비(유대교 종교지도자)와 유대인들은 카발라의 근본 경전인 '조하르'를 토대로 하는 연구자들로 보이고 카발라의 아인 소프(Ain Sof)는 '감춰진 신의 무한성'을 뜻하는데 실제로 고대 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송한 세럼이라 영화 속 멀미 나게 등장하는 수학공식이나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알 길이 없으나 랍비와 유대인들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아인 소프를 기반으로 한 코드라는 것을 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유대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진정한 이름'을 찾는 오랜 숙원으로 신의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이들은 216글자의 코드가 필요했고 같은 유대인이자 키맨인 수학자 코엔에게 경전을 제공하면서까지 설득하려 하지만 코엔은 스스로 선택받은 자를 자청하며 뜻을 거스른다. 

유대교 연구자들은 근본주의(원리주의, Fundamentalism)를 뜻하고 토라의 엄격한 규정과 시오니즘으로 대표되는 종교 특성의 강한 배타성과 극단적인 국수주의, 종교 이데올로기의 폐쇄성 대한 일침으로 읽힌다. 

 

 

 

 

  월스트리트 - 자본주의
주식의 패턴을 알아내 일확천금을 노릴 목적으로 코엔에게 접근하는 월스트리트의 조직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가성이자 힌트의 일환으로 수학자 코엔에게 국가기밀이 담긴 칩을 제공하지만 조직의 뜻을 거스르자 단숨에 친절한 미소를 거두고 난폭하게 굴며 목숨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월스트리트 조직은 금융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를 뜻하고 현세를 지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에 미친 인간군상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극단에 있는 구시대적 근본주의인 카발라와 현시대적 자본주의인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등장인물들을 배치하면서 인간의 탐욕과 끝없는 욕망에 대해 말한다.

 

 

 

 

 

신에 대한 도전과 기만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는 은퇴한 스승 솔은 핏대 세우며 에를레프니스를 열변하는 제자 코엔에게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코드를 알아내려는 그를 만류하기에 이른다. 

뇌졸중으로 사망한 스승이 극 중 퇴장하면서 영화는 코엔이 스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만드는데 같은 천재 수학자인 솔 역시도 이전에 진리에 근접하려다가 화를 입은 인물로 과오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항에 갇힌 금붕어는 광활한 우주 속 지구라는 작은 별의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 개개인을 뜻하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확증 편향 상태의 배태로 인간의 우매함을 지적한다. 

 

 

 

 


216자리 코드는 자연의 법칙이자 우주의 질서로 신의 영역에 해당하고 216자리 코드에 접근하는 행위는 신에 대한 도전이자 기만행위인 것.


즉,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 이미 깨달음을 얻고 현자가 된 스승은 이카루스의 날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바둑의 불규칙성을 예로 들며 충고한 것이다.

 

 

 

 

 

  이카루스의 날개
이카루스(이카로스)는 태양열에 밀랍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로 아비인 건축가 다이달로스는 위험천만한 비행에 대해 단단히 일러두었으나 호기심과 모험심에 한껏 들뜬 어린 이카루스에게 충고는 와닿지 않았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유레카'는 욕조에 몸을 뉘었다가 우연히 부력의 원리를 찾아낸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말로 그는 원주율의 근사치를 최초로 발견했고 이는 적분의 시초가 되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는데 거리에서 모래판에 원을 그려놓고 연구에 몰두 중인 그에게 한 로마 병사가 원 안으로 들어와 방해를 했고 이에 격분하다 병사가 휘두른 칼에 죽고만 것이다. 

216 코드를 우연히 찾아낸 코엔은 유레카를 외쳤을지 모르지만 아르키메데스의 말로는 비참했기 때문에 스승은 이와 같은 예로 설득하려 들었다.

 

 

 

 

  바둑의 무한대성
바둑은 가로세로 19줄로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복잡다단 하면서도 자유도가 높은 보드게임으로 치열한 두뇌싸움을 요한다.

'바둑에서는 절대 같은 게임이 나올 수가 없다'라고 할 만큼 바둑이 상징하는 무단대의 수 싸움은 예측 불가의 영역이지만 영화 <파이> 속 코엔은 현재의 '알파고'처럼 경우의 수에 접근해 216 코드를 해석하기에 이른다.

 

 

 

 

 

환각에 대한 메타포

 

 

  1. 침입자와 개미
강제로 문이 열리면서 빛이 들어오는 장면에서 침입자는 정체불명이지만 코엔의 집에 누군가 침입한 사실은 분명하다.

 

영화에서 컴퓨터 칩의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은 개미떼로 상징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개미는 신의 대리인(사자)으로 주식의 동태를 예측하고 숫자에 매몰된(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코엔을 방해하며 경고하지만 코엔(기만자)은 개미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인다. (신의 뜻 묵살)

 

 

 



  2. 뇌에 관련한 환각
뇌를 볼펜으로 찌르는 장면과 세면대 속 뇌에 개미가 들끓는 장면 역시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코엔을 막아서기 위한 경고로 해석된다. 

머릿속 복잡다단한 대뇌활동에 대해 시각화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유도하는 장면으로 좀 더 직관적인 형태로 기만자인 코엔에게 경고하고 있다.

 

 

 


   3. 드릴 형벌
드릴로 자신의 우뇌를 뚫어버리는 자학적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기만적 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의 장면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코엔에게 내려진 '신의 처벌'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로 읽히는데 진리의 영역에 감히 도달하려 든 기만에 대한 죄의식과 자기반성으로 보인다.

 

 

 


  4. 화이트 노이즈
코엔이 스승의 전철을 답습하며 세상을 등진 스승처럼 현자에 도달하는 장면으로 화이트 노이즈 속 홀로 있는 코엔이 등장한다. 

태초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한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역설적으로 구원처럼 느껴진다.

 

 

 


  5. 동양인 소녀
천재 수학자 코엔에게 간단한 수학 문제를 내면서 즐거워하는 이웃의 아이는 사제간인 솔과 맥스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지적 탐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과오를 반복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 동양인 소녀 역시 코엔처럼 스승(현자)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할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π(파이)

 


상징적 의미, 메타포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해 = 
개미 = 신의 대리인, 신의 경고

216자리 코드 = 자연의 법칙, 우주의 질서, 무한대, 신의 영역
216자리 코드에 접근하는 것 = 신에 대한 도전, 기만행위

코엔 = 기만자, 우매한 자
솔(스승), 엄마 = 현자, 경험자, 경고자
동양인 아이 = 예견된 기만자, 윤회의 상징

주식시장 =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미래예측)
종교(유대교) = 근본주의, 국수주의 (과거의 노스텔지아)
목적은 다르지만 탐욕과 기만을 상징하는 양극단의 예시

어항 속 금붕어 = 확증 편향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나 신념 따위에 갇힌 인간의 모습


꺼내 보인 뇌 = 자기 객관화
드릴 = 죄의식, 자기반성
화이트 노이즈 = 태초로의 회귀, 환생

π(파이) = 영원, 불변, 무한대의 연속성

인간은 답이 없다. 삽질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세상의 법칙이라는 '216 코드'에 대해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 설명해주면 좋겠지만(알아들을 수나 있고? 룸곡.. 흐른다 눙물...) 영화 맥락상 맥거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해서 수학적 해석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단지 감독은 진리를 둘러싼 인간 군상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특유의 몹시 염세적인 태도가 있고 구토 유발하는 어지러운 카메라 워크와 극단적이고 그로데스크 한 장치, 불친절한 메타포가 그득하다. 영화 한 편이 코드인 셈.

이 영화는 놀랍게도 수학과 뇌과학, 종교, 철학 모든 것을 다룬다, But, 더 놀라운 건 재미가 드럽게 없는데 여러 번 보고 맥을 짚으면 희대의 명작이지만 해석 없이 보면 반골기질 허세충의 아카데미식 습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유대인 감독이 유대교 카발라를 등장시키는 이 영화에서도 대런 애러노프스키 작품에서 늘 반복되는 주제의식인 회귀와 순환구조가 눈에 띄는데 이는 유일신 야훼를 섬기며 지상낙원을 건설하고 메시아의 품으로 가는 것이 목적인 유대교 사상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해탈하여 번뇌와 업을 끊어내면 다시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처럼도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에 윤회는 끊이지 않고 무한대로 반복된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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