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당하는 통수, 트윈 픽스
- 문화체육인/DRAMA
- 2021. 3. 8. 04:02
머나먼 우주와 같은 시절 시네21 김혜리 기자풍의 시네필을 앙망하여 지적허영을 주유하고자 데이빗 린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돈 코스카렐리 등의 컬트라 명하고 똥 싸다 끊긴 듯한 기기괴괴한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줏어 먹곤 했다. 자의식과잉이 팽배해 있던 우주 시절이니 가능했던 일이다. 왜냐. 맨정신에는 줏어먹지 못함.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만들어 낸 페이크 열광 같은 것인데 차라리 조롱하고 슈발조팔 찾았으면 장쾌하였을 터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듕하게 다루던 과거를 떠올리니 처참한 기분이다. 그땐 나 말고도 내 주변 마사루 같은 놈들이 다 같이 집단무의식을 행했다. 허공을 빨았지 뭐야.
고릿적에도 데이빗 린치의 악명은 높았다. 잰체하던 동아리 선배들도 느그가 영화를 아느냐는 허무맹랑한 답 외엔 그럴듯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 보고 나면 뒷맛이 드럽고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도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작품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틀어놓고 멍치고 있으면 '오늘도 이렇게 인생을 낭비했구나...' 존나 지루해서 하품 나고 허영으로 가득 찼지만 쨍한 몇몇 장면이 형상화되어 내 속에서 두둥실 부유하던 레오 까락스 류의 영화와는 달리 깔아놓은 떡밥과 캐릭터는 일순간 거세되고 기괴한 이미지만이 파편으로 남아 나님의 드러운 기분만 남지만 못 볼 것을 억지로 봐놓고 흥분타는 것으로 막장드라마의 길티 플레져와는 또 거리가 있었다. 지금도 야무지게 설명 못함.
영화판 트윈 픽스는 이전에도 보았고 간략하자면 내용은 이렇다. "모범생 코스프레하는 동네미녀가 알고 보니 마약하고 성매매하고 온갖 방황을 일삼다 악령에 빙의한 느개비에 살해당하고 그 혼령은 성녀가 된다." 딱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영화판 결말이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기승전결의 결을 따려는 노력이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상식적이지 않고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그렇지 뭔가 락킹한 느낌으로 매조질 된다.
한 달여에 걸쳐 드라마 트윈 픽스 시즌 1, 2를 끊어보았고 시즌 3는 에피 2까지 주행 타다 빠꾸했다. 오랜만에 연초가 땡기더라고. 도저히 봐줄 수가 없음. (도리도리) 안될 일이다. 내용과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미장센에 집중타는데 심지어 미적이지도 않음. 중간에 폰게임을 씐나게 해도 씬이 끊나지 않.. 하..... 왜 보여주는데 미친 영감탱..
촬영지는 같아 보이지만 영화판 트윈 픽스의 배경이 화이트 트레쉬를 양산해내는 하층민들의 거주지이자 캐나다 접경지의 깡촌 느낌이라면 드라마 트윈 픽스의 배경은 뭔가 알짜배기 중산층이 거주하는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 같다. 시골 특유의 폐쇠성은 동일하나 드라마는 약간 전원일기 삘도 남. 어딘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새소리가 짹짹하는 대자연의 오프닝 시그널 때문일 수 있겠으나 인물의 매력도 배경도 아닌 데일 쿠퍼(카일 맥라클란)의 우호적인 태도 때문이다. 사실 그의 태도를 제하고 보면 쓰레기 마을이 맞음.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연출과 환각을 불러일으킨다"라는 아무개 시네필의 평은 온당치 않다. 무슨 막말이냐. 화이트 트레쉬 타운의 집단환각파티 느낌을 받았다면 그게 맞는 거다. 등장인물들이 전부 약에 취해있다고 가정하면 모든 게 척척 맞아떨어지기 때문인데 트윈 픽스 시리즈를 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한마을의 절반 이상이 미친놈계(Insane) 아니면 금치산자인데 몽환을 찾고 현몽을 들이대는 건 얼토당토않지. 여기서 형이상학 도출을 하려고 착즙기를 들이대는 것마냥 한심한 게 또 없음. 그래서 소위 시네필들의 잰척하는 컬트사랑은 구라란 말이예욧!! 그저 너님은 이해 못 하는 심오한 예술세계 나님은 이해함 ㅇㅋ? 이걸 하고 싶은 거라고. 골까네? 저렇게 깔아놓고 막판에 똥을 싸고 깔고 앉을 수도 있구나?! 이것이 린치의 악명이구나! 정도면 충분하다고. 어떤 이에게는 이러한 평도 너그러울 것이다.
아무튼 드라마판 트윈픽스에서의 인물 묘사가 구체적이고 개성 있어서 몰입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착실히 따르면 다른 의미로 뒷목 잡음. 영화판과 달리 드라마판에선 미녀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해서 매력으로 쳐먹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따로 인물 포스팅에 해보겠다.) 90년대 초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이건 다 미녀들의 매력터짐 덕분일 것. 한국에서도 심야에 더빙 방영했었다고 하는데 분명 일본문화의 영향 덕분일 것이지만 추억하는 사람이 의외로 없다. 일본은 창작물을 비쥬얼로 뜯고(맛보고 즐기고) 한국은 개연성과 서사로 뜯어먹는다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이계에 로그인했다가 결국 악령에 홀려 흑화 되었다'로 트윈픽스 시즌2는 결말짓는다. 살인 근친상간 납치 감금 매춘 불륜 마약 사기 빙의 부활(?) 그 모든 막장을 뚝따닥 해치우고도 개중에 가장 인류애 넘실대는 남주를 흑화 시켜 버리는 잔인무도한 자가 데이빗 린치인 것이다. 부들부들.
알고도 당하는 통수잼.
의미를 부여하고 과몰입하는 순간 그날로 소주짤을 찾게 되는 마성의 린치필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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