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 본격 비출산 장려 왓챠 드라마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은 2015년 니콜로 암마니티가 쓴 동명소설 원작으로 이탈리아 TV 미니시리즈로 왓챠가 독점 공개했다. '촬영 시작 6개월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라고 자막이 깔리기도 하는데 정체모를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상황을 다루고 있어 팬데믹 시대에 딥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전세계적으로 흥행 중이란다. 

 

시칠리아는 영화 <그랑블루>로 인해 여름 햇빛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장소로만 기억되지만 이 드라마로 인해 다른 감각을 느끼게 했다. 쓰레기가 낭자하고 다 무너져가는 폐허에서도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건축물을 뽐내는데 말 다함. but 그 외의 것은 아름다운 것이 일절 없는 소돔과 고모라 되겠다. 

 

머리가 땡땡 아플 정도로 충격의 연속. 아동용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연달아서 본 느낌. 예술적 성취는 있지만 죶같다는 의미다.

 

*아래는 대량스포를 포함한 포스팅입니다.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ANNA - Una serie di Niccolò Ammaniti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 요약 줄거리

어른들만을 죽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아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정확히는 2차 성징 이전의 아이들만이 역병으로부터 안전하고 초경이 시작되고 수염이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에 도달하면 어른처럼 홍열을 앓게 되고 병마와 시름하다 죽음에 이른다. 

주인공 안나(줄리아 드라고토)는 영민하고 용감하며 모험심 강한 13세 여자아이로 죽은 엄마의 당부대로 어린 이부동생 아스토르(알레산드로 피코렐라)를 보살피며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분골쇄신한다. 이 과정에서 안나는 또래인 피에트로(지오바니 마빌라)와 만나 둘은 친구가 된다.

 

어린아이들만 생존한 도시는 폐허가 되고 무주공산 속에 무력이 강하거나 식량을 많이 비축해두었다던지 잔인성이 높고 호전적인 아이들 중심으로 계급이 형성되고 몇몇은 우두머리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부유하게 자랐고 잔혹성과 반사회성이 타고난 아이 안젤리카(클라라 트라몬타노)는 공동체 생활, 잠자리와 식량조달, 보호의 명분 하에 '파란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하며 리더로 추앙받는다.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집단의 형태로 노동착취적이고 안락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으나 파란 아이들은 명령에 따라 체제에 순응한다.

 

 

 

 

집 안에서 불을 피우다 근거지를 노출시킨 아스토르는 '파란 아이들'의 표적이 되고 붙들려 끌려가게 되는데 안나는 남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파란 아이들의 주둔지로 가는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되고 제 발로 들어간 소굴에서 아스토르를 찾게 되지만 단체생활에 적응한 남동생은 집으로 돌아가길 거부한다. 


탈출을 시도하던 안나는 독사에 물린 뒤 안젤리카에 붙들려 팔이 잘리게 되고 이 잔혹한 소녀의 결혼 상대로 낙점된다. 한편 그곳에 반강제로 상주하던 '죽지 않는 어른' 카티아를 산채로 불태워 뼈가루를 먹어 홍열을 낫게 하려는 망상에 빠진 안젤리카의 계략을 공유하고 합심해 처단하기에 이른다. 카티아는 암수한몸의 자웅동체로 '죽지 않은 유일한 어른'으로 등장하는데 전염병은 호르몬에 의한 바이러스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가에 사는 피에트로는 안젤리카와 마찬가지로 홍열에 걸리게 되고 최후를 위해 시칠리아의 에트나 활화산으로 향하는데 안나와 동행하게 된다. 피에트로는 어른에게 배운 대로 비닐봉지 두 개로 질식시켜줄 것을 안나에 부탁하고 남자친구를 허망하게 보낸다. 돌아오는 길 안나는 바다 지평선을 보고 섬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남동생 아스토르를 찾은 안나는 바닷가에서 페달보트를 구해 메시나 해협을 건너게 되는데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중 대형 선박을 발견하고 그 안에 병으로부터 온전한 어른과 마주하게 된다.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 결말 해석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의 엔딩은 생경한 결말에 가깝다. 할리우드 영화 속 엔딩처럼 거지꼴을 한 아이들을 구조하려고 발등에 불 떨어진 인도주의적인 어른은 없고 대치상태에서 놀란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며 막을 내리는 아트시네마적인 은유로 마무리 짓는다. 갓난아기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으로 대신할 뿐인데 성인남녀 무리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상태임을 대신한 듯하다.

 

애초 시칠리아 섬만 역병이 돌아 주변이 봉쇄되고 한 지역이 초토화된 것인지 역병이 돌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구조 없이 아이들만을 방치할 만큼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온 지구에서 어른의 씨가 말라 곱창난 상태인지 알 길이 없고 대형 선박 안에 생존한 어른들 역시도 역병을 피해 탈주한 무리인지 저 먼 나라에서 비즈니스로 인해 출항 길에 오른 무리인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굳이 가설을 세워 뭍에서의 역병을 피해 갖갖으로 탈출에 성공한 어른들이라면 아마도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않고 굳어버린 이유는 바이러스 전염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배 안에 아이들이 있어서 황당하다는 표정이라기보다 공포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남매가 생존을 위해 세이브존을 찾은 것처럼 그려지지만 신약이나 치료 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안나와 아스토르는 죽게 될 것이다. 특히 2차 성징이 얼마 남지 않은 안나에게 희망은 없다. 남동생 아스토르라도 살려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인 '엄마가 죽고 나면 할 일들'의 최종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본격 비출산 장려 드라마

 

이 드라마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함과 동시에 잔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등장한다. 과거 한때 어른을 괴롭게 하는 무자비한 초등학생 연령층의 아이들 무리를 지칭하는 말로 초글링(초딩+저글링)이라 부르는 인터넷 용어가 생겼었는데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에서는 이와 같은 말 그대로 '초글링의 습격'으로 떼로 몰려다니며 약탈을 일삼고 폭력을 저지르며 살인에도 가담을 한다. 

 

지식과 이해력,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도덕성과 예의범절은 자라면서 학습에 의해 형성이 되지만 전무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인지능력은 야생동물과 다를 바 없다. 오직 힘의 논리만으로 지배되다 보니 미개와 야만의 시대가 펼쳐진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어린 소년들만이 고립된 무인도 생존기 <파리대왕>, 아일랜드 시골소년의 광기의 역사를 담은 닐 조던 감독의 <푸줏간 소년>과 같은 작품과 유사점을 보이는데 수위와 디테일한 표현방식에 있어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악랄하고 적나라하다.

 

애초 그릇이 남다른 주인공인 안나와 아스토르(남동생), 피에트로(남친)은 선역이라 측은한 마음과 동시에 응원하게 되지만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징그러운 수준으로 마치 좀비 떼처럼 묘사가 되어 있어 비출산을 장려하고 나선다.

 

 

 



  다양한 아동빌런과 어른들

개중에서도 유독 악질적인 몇몇 아동빌런들에게 안나가 고초를 겪는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 파울로와 마리오 쌍둥이 형제는 식품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죽자 풍부한 물자로 무주공산의 시대에 거래상이 역할을 한다. 

 

홍열로 마리오가 죽자 홀로 남겨진 파울로는 램지볼튼화 되는데 안나를 가두고 개처럼 조련하려 하지만 자신보다 무력이 훨씬 강한 피에트로에게는 꼼짝도 못 하는 강약약강을 시전한다. 금세 돌변하여 유순하고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파울러의 캐릭터는 허를 찌른다.

 

 

 

 

본능과 미개함이라 치부하기에 인간으로서 잔혹성이 범주를 넘기는 캐릭터가 파울로라면 안젤리카는 사이코패스형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세계관 최강의 빌런이자 최고 포식자의 포지션을 선점하고 있다. 여자아이들 무리에 들고 싶어 하는 아이(루차)를 교묘한 수를 써 떨어트려 죽게 만드는 일로 태초에 잔악한 소녀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안젤리카의 에피소드에 깔리는 테마곡 <Over The Rainbow>의 가사는 여러모로 소름 끼치게 한다. 

 

여자들은 자라면서 대부분이 경험하지만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이와 같은 여자아이 무리 안에서의 은밀한 공격 문화에 대해서는 레이철 시먼스가 집필한 <소녀들의 심리학>이라는 도서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누굴 죽게 만들 정도의 악랄한 여자아이는 극소수에 가깝겠지만 또래집단 인간관계 형성에서 호승심을 이용해 망신을 주며 왕따 시키는 방식 자체는 여자아이들 집단에서 흔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동빌런에게 타깃이 되는 쪽은 언제나 호승심 강하고 예뻐서 눈에 띄는 안나와 같은 여자 아이다. 상처 받고 찌그러지거나 악당들과 같이 흑화되기 마련이지만 주인공답게 결코 접히지 않고 본인의 롤대로 헤쳐나간다. 주인공은 날아오는 100방의 총알도 다 피하는 마당에 웬만하면 옥체는 훼손하지 않고 가는 편인데 안나는 말 그대로 절단난다. 이렇게까지 고약할 필요가 있나 싶다. 

 

활화산을 오르는 피에트로 머리에 철통을 씌우는 장면에서도 기함했는데 오즈의 마법사의 사이보그 프라이머리 양철 나무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백뮤직으로 깔고 오즈의 마법사 캐릭터를 차용했으면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싶어서 뒤져봤지만 그저 사디스틱한 설정일 뿐 아무런 연관관계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등신이오.

 

 

 

 

안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집에서 유명을 달리한 엄마 역도 혈압상승 포인트 중에 하나인데 지가 나가서 뒤지면 될 일을 안나에게 시체를 처리하게 하는 장면에서는 리얼 분개했다. 이외에도 어른처럼 구는 안젤리카의 과한 옷차림이나 옷차림보다 과한 행동, 등장인물들의 잔혹성과 폭력의 수위가 너무 높아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나 대가리가 깨질 지경이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출연진이 10세 전후의 아동으로 이게 가능할 일인가 싶었다.

 

미카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만 봐도 같은 주제를 풀어내는데 있어 빙식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은유로 대처 할 수 있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그 반대여야 하는 부분은 은유로 대처하는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은 대단히 기괴하고 선 넘는 드라마로 찝찝한 뒷맛이 남는다.

 

 

 

아동빌런들의 정털림과 별개로 아이를 대상으로 아크로토모필리아(절단도착증)이나 GL 설정(지네브라x카티아 외에도 안나를 탐내는 안젤리카), SM코드(목줄, 거꾸로 매달리 등 과한 설정)가 대놓고 들어가 있는 것도 내내 불편했던 이유인데 이탈리아 영상매체의 심의 수준만 봐도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제작자의 사돈의 팔촌까지 털리고 호되게 뚜까 맞았을 텐데 이탈리아는 예술이란 명목 하에 너무 많은걸 우겨 담았다. 유럽 망해라.

 

팬데믹에 대처하는 유럽인들 수준만 봐도 유럽은 망해도 싸다. 아이는 절대지켜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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