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액트, 끝까지 기만한다

 

<디 액트>는 2019년 미국 디즈니 자회사인 훌루닷컴(hulu)에서 제작된 오리지널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드라마이다. 패트리샤 아퀘트, 조이 킹, 클로에 세비니, 안나소피아 롭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자본력이 놀랍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보는 내내 감탄했지만 그보다 실로 놀라운 진실들이 숨어있어 언급을 안 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아래는 대량스포를 포함한 포스팅입니다.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문제

 

환자 코스프레로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 내는 뮌하우젠 증후군(인위성 장애)에 관한 줄거리로 설명하고 홍보하는데 정확히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며 간호 대상이 기저질환이나 신체에 이상이 없음에도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연출해 주변에 성자로 칭송받고 교묘하게도 관심을 끄는 행위를 말한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항목이 따로 있다.

 

인위성 장애는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에서 발현된다 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는데 권위적인 어머니에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하기 일쑤인 디디의 과거 모습으로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퉁퉁한 몸에 평범한 외모로 누가 봐도 아닌데 과거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둥 자신을 포장하는 말들 역시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었음을 설명한다.

 

 

 

딸의 장애를 내세워 꿀빨기 위한 반사회성 짙은 사기범죄자인지 리플리증후군처럼 딸의 장애를 진심으로 믿어 벌이는 일인지 아리송한 대목일 테지만 패트리샤 아퀘트가 분한 드라마 속 집시의 엄마 디디 블랜차드는 과거 사기전과 경력을 보아 반사회성이 높은 인물인 것은 명백해 보인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알 길이 없으나 동정심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편취하는 자이며 튜브가 아닌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딸을 휠체어로 끌어내리는 행위를 보아 인면수심의 가정폭력범이자 사기 및 절도까지 행하니 범죄의 종합체라 할 수 있다.

 

선천적, 유전적 요인으로 반사회성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사이코패스)와 후천적,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환경이 영향을 끼쳐 반사회성이 발현되는 문제(소시오패스)는 극을 끝까지 시청하면 곱씹을 수밖에 없다.

 

 

 

  항마력 딸리는 시점

집에 널려있는 수많은 인형, 차고 넘치는 약들, 공주 드레스와 같은 과한 옷차림은 정병 집구석 클리셰라 유령의 집이나 광신도가 없는 사이비종교 르뽀 같은 기기괴괴한 느낌을 주는데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모녀의 대가리꽃밭 합창 씬보다는 기괴하진 않을 것이다. 그 느끼함이란 달빛 별빛 문 크리스탈 파워로 진심 항마력을 불러일으킨다.

 

조이 킹이 분한 집시 로즈 블랜차드는 친구도 없고 타인과 교류가 적어 늘 사람이 고픈 아이라지만 무해한척 불쌍한 척 장애를 핑계 삼아 연기하고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한 자그마한 여자아이임에도 상당히 징그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집시의 두 번째 남친으로 등장하는 얼빠진 놈 닉 고데존의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정체감 장애) 설정은 중2병 그 자체라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 착한 닉과 나쁜 빅터를 자유자재로 끄집어낼 수 있다니 실소 터진다. 

 

의사소통 애버리지 이하인 금치산자에 가까운데 얘를 꾀어내서 범죄에 이용한 것이 용할 정도로 닉은 후반부로 갈수록 덜떨어진 모습으로 진화하는데 본디지웅앵이 미국 사회에서는 흔한 섹슈얼 환상이고 채팅 문화일 수 있으나 애초 B.D.S.M 개념을 이해하고 운운할 정도가 되나 싶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가스라이팅의 주체 전환으로 상정하고 지배(Dominance)의 포지션을 점하려던 닉이 집시에 가스라이팅 당해 결국 피학(Masochism)으로 역공당했다고 보면 이건 에미상을 싹쓸이해도 모자랄 탄탄한 설계지만 중2병 환자로 스타트를 끊어 변태로 변태한 뒤 일순간 금치산자로 진화하는 요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단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피해자인가 공모자인가 

디 액트 초반, 디디의 광기가 섬뜩하다기보다 미국 놈들의 개인주의 문화가 주는 고립은 수많은 정신병자를 양산해내고 아동이 학대를 받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시스템 탓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건 토끼몰이에 불과하다.

 

엄마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가스라이팅 당해온 딸 집시는 거짓과 부조리함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의사를 끊임없이 내비쳤으나 사지 멀쩡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음에도 자신만을 보고사는 엄마를 가련하게 여기며 끝내 떠나지 못한다.

 

이유를 막론하고 여기엔 집시의 자발성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강요에 의해서였던 엄마에 대한 측은지심과 운명공동체적인 관계를 끊어낼 수 없어 벌인 일이었건 엄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세상을 속이는 일에 동조해온 것이다. 

 

 

 

극 초반 집시는 가련한 아동학대 피해자로만 그려지지만 극이 중반에 다다르면 그녀가 과연 아동학대의 피해자(victim)인가 공모자(confederate)인가에 대한 퀘스천 마크가 붙기 시작한다. 

 

장애인을 연기하며 이득을 편취할 때는 한패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를 못 만나게 하는 엄마는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려지기 때문인데 세상과 격리되어 어떻게든 소통하고 싶은 갈망에 집을 벗어나 사회에 편입되고 싶다는 욕구와는 의도가 달리 보인다. 

 

그 원인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이성친구를 사귀고 성욕에만 편중되어 있는 탓인데 특히 잔디 깎는 또래 남자애를 창문 틈 사이로 몰래 바라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성에 호기심을 느끼는 소녀의 시선이 아닌 관음증 있는 변태성욕자의 시선처럼 탐닉적이고 몹시 불쾌하게 연출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집시의 살인 공모가 '미친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오로지 뻐렁치는 성욕을 이기지 못해 방해자를 없애는 명목으로 모친을 살해한 것은 아닌지 동기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사회적 약자는 악마가 될 수 없다는 편견

경찰에 붙들려서는 갑자기 모든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급발진 걸면서 사이코패스화 되는 장면은 어이 털리는 포인트일 텐데 연출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역으로 사회적 편견을 깨부수는 장면이 되겠다.

 

이 드라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자로 상정한 장애인 내지는 소수자에 대해서 얼마나 쉽게 동정심을 보이는지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과 반사회성은 엄연히 다르지만 사회가 보호해야 할 존재를 늘 쉽게 피해자로 상정하다 보니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집시의 ACT에 속절없이 속아 넘어간다. 

 

본디지와 뻐렁치는 성욕을 맥거핀으로 상정하고 '엄마 디디에게 학습당한 대로 남자친구 닉을 가스라이팅 했다'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면 집시라는 인물은 매우 소름 끼친다. 심지어 그녀는 엄연한 성인이고 '가짜 장애인'이니 보호받아야 할 대상 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동정심과 연약함을 무기로 덜떨어진 남친의 이용해 손 안 대고 코푸는 식으로 엄마를 처리하면서도 후원금을 고스란히 챙겨 달아난 일, 후원금을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마트에서 도둑질한 일, 경찰과 변호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은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으니 죄가 없고 비중을 달리 둬야 한다는 주장과 청부살인을 지시하고 나몰라라 남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일, 도움을 줄 사람이 없어지자 그간 연 끊고 살던 아버지에게 자신이 아동학대 피해자였음을 입증하는 서류를 부탁하기 위해 불러들인 일이 그 예이다.

 

하지만 대미는 동정심이 많고 친절한 이웃 언니인 레이시에게 연락해 면회를 요구한 일이었으니 본인의 심신미약을 열성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한 것일 뿐이지만 얼마나 기댈 곳이 없었으면 레이시에게 연락을 했을까 시청자의 연민을 끌어내며 끝까지 기만한다.

 

레이시 대신 그녀의 엄마인 멜이 집시를 면회하는 마지막 회는 그간 레이어드한 편견을 단번에 깨부수는 장면으로 "난 네 엄마가 될 수 없어. 넌 이제 혼자야. 넌 누구니?"라는 본론적인 질문을 던지며 비로소 진실과 맞닥뜨린다. 일관된 자세로 진실을 꿰뚫어 보는 감시자의 눈을한 멜의 아닥스킬 시전에 한껏 불쌍한 얼굴을 지우고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집시의 장면으로 그녀의 ACT는 그렇게 들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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