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살인, 당신자신이 믿는 것
- 문화체육인/MOVIE
- 2021. 6. 21. 06:53
배우 야쿠쇼 코지를 몹시 애정한다. 그중에서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작품에서의 파괴지왕 야쿠쇼 코지에 환장함. 필모그래피의 거의 모든 영화를 섭렵했는데 딱 한 작품 안 보고 묵혀놨던 것이 <세 번째 살인>이었다. 제목만으로 흥미가 스멀스멀 올라왔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복장 터질 것이 분명해 의도적으로 흐린 눈 했다. but, <환상의 빛>을 다시 본 뒤, 결국 꺼내 들고 말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 이후 직계가족 내지는 가족 비스무리한 집단을 주제로 해체와 결속, 공동체 의식과 사회화를 다룬다. 그 어떤 그지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적이고 반짝이는 개인을 그려내는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무수한 생각이 쏟아지게 만듦.
영상예술은 축약의 미학이고 러닝타임 내에 화면으로 만나고 싶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또 한 편의 영화가 전개되는 것처럼 피로감을 유발하는데 여기에 죄의식과 곱씹을 거리는 덤이다. <세번째 살인>도 패밀리의 울타리만 벗어났지 결국엔 같은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복세편살 불가. 사람 쉽게 안 변함.
범인이라 자백까지 끝낸 피의자 신분의 미스미(야쿠쇼 코지)와 그의 변호를 맡은 세명의 변호사 중 한 명인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죽은 피해자의 딸(히로세 스즈)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변호인은 진실과 거짓에 관계없이 피고의 결백 내지는 형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입장에 놓인 자들이다. 전과가 있던 피고인 미스미는 이미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진술을 끝낸 상황으로 사형 내지는 무기징역의 뻔한 결과만이 남아있다. 이러한 명백한 상황에서도 사형은 면하게 하려고 변호사들은 피해자 가족과 주변인을 만나러 다니는데 피의자 미스미는 진술을 여러 번 번복하고 피해자의 아내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재판에 가까워져서는 본인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 사이 세명의 변호인단 중 두 명은 평이한 사건이라 여겨 애저녁에 굴복해 버리고 정황을 꼼꼼히 살펴 나가던 변호팀의 시게모리는 사건을 팔수록 피해자의 딸에게 의문점을 갖게 되면서 피고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사형을 면하기 위해 거짓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미스미, 범행 장소에 방문하고 운동화에 핏자국을 묻히고 있으며 자신을 성적으로 유린한 아버지를 고발한다고 하면서도 끝내 주장을 거둔 딸 사키에. 양쪽 모두 면죄부를 위한 거짓을 말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미스미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되고 피해자의 딸 사키에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에 익숙한 관객에게 <세 번째 살인>은 절대 개운한 영화가 아니다. '누가 범인인가?'를 쫓는 법정스릴러물과 흡사한 양상을 띄지만 이 영화는 범인 색출에 대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그러니 결국 범인찾기는 무쓸모다. 영화를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정황상 미스미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정도는 명백해 보인다. 딸 사키에의 사주를 받은 공범관계이거나 사키에의 단독범행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극에서 법정 증거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단독범행으로 결국 사형 판결을 받은 미스미에게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속 터지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여기에 있다.
당신자신이 믿는 것
보편타당한 합리성으로 관철된 시선이건 어떠한 생각이나 사건에 과몰입되었건 권위를 가진 누군가로 인해 생각이 주입되었건 내식대로의 논리를 집요하게 따르건 누적된 편견을 차곡차곡 쌓고 있든 간에 어떤 연유에서든지 한번 적립된 선입견은 뒤바꾸기 어렵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믿는 것'이지 진실 따위가 아니다.
영화는 '내가 믿는 것'과 '진실'의 경계에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진실은 때론 '내가 믿고 싶지 않아 하는', '나의 상식이나 가치 따위와 첨예하게 다를 수 있는' 것임에도 대부분의 극 중 인물들은 일련의 진실보다 '당신자신이 믿는 것'에 손을 든다.
이들을 몰아세우고 눈먼 자들이라 탓하기도 뭣한 게 여기에도 일정 정도 경험에 의한 보편성과 합리성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대다수 사람들이 의례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과도 상통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조인은 더욱 진실규명에 엄격해야 하고 집요하게 쫓아야 하지만 관례와 시스템에 굴복하고 평이함에 따르는 것은 시간낭비로 여겨지거나 편견에 의한 것만이 아닌 집단의 보수성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천사 같은 딸의 누군가를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거짓 눈물연기, 상황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약자 포지션인 피해자 딸의 능청스러운 거짓말에 변호사 시게모리는 '내가 믿는 것', 혹은 그간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사방시안을 갖고 첨예하게 들이댈 수 있는 사람, 집단 안에서 다수를 따르지 않고 배짱과 열의를 갖고 진실규명에 힘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집단의 폐쇄성이 강하고 상하관계가 엄격한 한국이나 일본의 조직사회에서 시게모리와 같은 인물은 별종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가 가진 반골기질 발현이나 돼도 안 되는 일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데에는 명망 높은 판사 아버지의 백그라운드 덕분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게모리와 미스미의 얼굴이 겹치는 마지막 접견실의 연출은 의미가 있다. 이 장면에서 미스미는 시게모리 변호사에 절절한 고마움을 표한다. 아무도 들어다보지 않던 진실과 맞닿기 위해 열의를 보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이 시게모리의 직업윤리에서건 단순한 선의에서건 반골기질 덕분이건 우연히 맞아떨어진 사건의 연속에서 힌트를 얻어 진실에 도달했건 간에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위해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비록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구원일 수 있다.
당신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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