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 후기, GDP 상위 국가는 담기 버거운 나홍진의 파파괴

 

 

구로사와 아키라급으로 올려치는 파괴왕 나홍진 원안 제작 공포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4월부터 목이 빠져라 기다린 끝에 개봉 당일 관람. 역시나 아주 흥미로웠다. 

 

*아래는 대량스포를 포함한 포스팅입니다.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GDP 상위 국가는 담기 버거운 나홍진의 파파괴

서양의 오컬트는 반종교적, 정확히는 반그리스도의 색채를 띄는데 악마 숭배가 대표적인 반면에 동양의 오컬트는 그야말로 잡귀, 잡신의 이유모를 노여움에 가깝다. 사악한 잡귀가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파괴하는 것은 일본이나 태국, 인도와 같은 잡신을 섬기는 문화권에서 파생된 형태로 한국의 귀신은 이유 없이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 이건 뇌피셜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단다.

 

그 근원을 떠올려보면 홍수, 우기, 지진, 태풍, 해일과 같은 기상과 지변의 재난이 극심한 지역에서 자연재해에 무력함을 경험함으로써 자연의 초월적 힘을 영험하게 받아들이게 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는 토속적 문화라고 어디에선가 어렴풋이 주워들은 거 같다.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는 지진 피해가 드문데 비해 일본만 해도 피해가 막심하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피한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도가 없음. 

 

한국의 귀신은 한서림에 명확한 이유가 있고 사또나 암행어사와 같은 사건에 직접적인 개입이 가능한 고위 관리 책임자가 문제를 해결해 원혼의 한을 풀어주면 큰절을 올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승의 한을 손봐준 인간에 답례의 형태로 복과 부를 내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설의 고향은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웰메이드인 것.

 

이런 한국의 본대 있는 귀신컬쳐로는 파괴적이고 사악한 영상물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의 파괴왕 나홍진드는 무수히 많은 무속신앙이 존재하고 잡귀 따위도 당연시 섬기는 태국으로 시선을 돌려 기어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야 만다.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야 하니까. 초월적인 대자연의 힘 앞에 인간 따위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지론처럼 느껴졌다. 이건 <곡성>에서도 느꼈던 바다. 

 

청와대 국민청원 민원귀에 가까운 한국 귀신은 논리 정연해 노잼을 유발한다. 산발한 비주얼만으로는 씅에 차지 않는다. 심지어 모실게 마땅치 않아 맥아더랑 태진아도 모심. 그래서 곡성에서도 뜬금포 터지게 잡귀의 산고장 일본에서 쿠니무라 준 아쿠마를 초빙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의 정합성과 적절한 메타포를 심어줘야 세계적인 거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랑종의 파파괴에도 이유는 있다. 이건 연관검색어에 나홍진 인성이 뜨는 웃픈 현실을 쉴드치는 개인의 뇌피셜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직접 쓴 각본에 메가폰을 잡기 않고 제작자로서 한발 빠져 시선을 빌렸는지 잡신컬쳐가 차고 넘치는 가까운 일본을 두고 굳이 배경을 태국으로 선택한 것인지 이해가 간다. 원시적인 것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고도로 발전한 문명국에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원초적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의 파파괴를 담기란 GDP 상위 국가는 버겁다. 개봉 첫 주부터 여성 혐오와 동물학대 논란으로 트위터는 잔뜩 화가 나있다.

 

 

 


  대물림과 연좌제


사악한 잡귀에 빙의된 딸 밍으로 인해 죄 없는 가족들이 깡그리 요단강 건너는 이야기라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죄목이 있다. 신내림을 거부했다고 해서 저렇게 한 집구석이 작살날 일인가 싶기도 한데 영화 중간중간 인터뷰에 응하는 등장인물들은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하나같이 자백 아닌 자백을 이어간다. 


노이는 딸 밍의 나이쯤 집안 내력에 따라 신내림을 받을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싸구려 부적을 동생인 님의 신발에 넣고 자신의 속옷을 입혀 신내림 대상을 바꿔치기하고 평생 바얀 신을 부정한다. 동생에게 모두 떠넘겨 반강제로 무당 만들어 놓고는 동생과 왕래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데다 본인은 영의 부름이 두려워 천주교 신자가 된다. 여기에 사과는 한마디도 없다.

 

노이가 혼인한 아싼티야 집안은 범죄집단에 가깝다. 집안에서 운영하던 방적공장이 어려워지자 노이의 시아버지 되는 사람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방화를 저질러 노동자들의 목숨을 해친 일이 있다. 방화가 들통이 나자 목을 매고 뒤진다. 표면적으로 법의 단죄를 받은 이는 존재하지 않으나 저주로 인해 이 집구석 남자들이 단명하고 마는데 주변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묵살하며 살아간다. 흐린눈 하고 회피한다. 이건 밍이 신내림 전조증상이 찾아왔을 때도 같은 패턴을 보인다.

 

화재 이후에도 나라에서 법으로 막아놓은 개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파는 일로 범접적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이는 집안에서 키우는 반려견 럭키에 대해서 금붕어를 키운다고 생선을 안 먹진 않잖냐는 해괴한 주장을 펼치며 정신승리하는 인물로 너무도 순수하게 맑게 자신 있게! 지껄이는 바람에 이해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 건지 비난해야 마땅한지 포지션을 잡지 못한 관객은 되려 인지부조화가 온다.

 

마닛 역시 노이처럼 회피형 인간이자 개빻은 아재로 노이의 딸 밍과 근친상간한 아들 맥이 처지를 비관해 나무에 목을 매 숨졌으나 주변에는 오토바이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고 쉬쉬한다. 그뿐이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내와 갓난쟁이를 두고도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시시덕 거리며 여색을 밝히는 추잡스런 인물 되시겠다. 그럼에도 한없이 해맑고 긍정병이 돋아있는 것이 이 저주받을 집구석의 종특인 것 같으다.

 

 

 

 

이 영화에서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이 드는 것이 죄목이 명확한 노이와 마닛 정도만 단죄받으면 그만이지 엄한 마닛의 아내와 갓난쟁이 아들까지 처참하게 화를 당한 일과 밍은 무슨 죄를 지어 그토록 잔혹한 각기춤을 춰야만 했나 의구심이 들 것인데 무속신앙의 보편적 특징인 대물림으로 이해하면 스토리에 한발 더 들어갈 수 있다.

 

'내 대는 피해 가더라도 조상의 업보가 자식에게 해를 미칠 수도 있다' 믿어 부모세대가 제사와 조상묘 쓰기, 풍수지리, 부적, 기도 등에 공을 들이듯이 대물림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이거슨 확신의 연좌제구나 싶다. 21세기에 가능한 사고의 메커니즘인가 싶겠지만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를 거 없다. 피의 연좌제는 업보이며 대대손손 이어진다는 사고는 국룰이었다.

 

밍이 봉인된 방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 하는 장면 역시도 fake성애자, 엄마 노이에게 내려받은 유산과 같은 속임수스킬로 대물림의 상행하효로 이해했다. 이래서 웃어른들이 본대 있는 집안을 그토록 찾는 것이었더랬다. 

 

 

 

* 이 외에도 회수 가능한 떡밥이 천지빼깔이니 각잡고 쓴 해석본을 참고하길 바람

 

https://nigagarahawaii.tistory.com/32

 

랑종 스포일러 포함 결말 자의적 해석 (빙의 강아지 회색차 의미)

랑종 스포일러 포함 자의적 해석 (빙의 강아지 회색차 의미)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나홍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랑종>을 관람하고 혼탁하고 또 혼란하여

nigagarahawaii.tistory.com

 

 

 

 

  곱씹을수록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벽에 머리를 때려 박는 것, 식탁에서 오줌을 싸는 것, 피철철 하혈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뜬금포라기보다 장르적 클리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기대 예상치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높은 수위로 당혹스럽게 한다. 10을 기대하면 1000의 대미지를 안겨주는데 요새는 잘 안 쓰는 말이지만 엽기 그 자체로 상상의 영역보다 몇 발 더 들어간다. 매운 짬뽕을 시켰는데 상당히 매울 것을 예상은 했지만 지옥에서 온 캡사이신탕을 들이밀면 어떡하냐고. 1절만 해, 미친넘아 선 넘네.

 

랑종을 굳이 빗대자면 동양판 오컬트 <캐빈 인 더 우즈>라고 할 수 있다. 호러의 종합 선물세트라는 의미에서 그러한데 후반부에는 오컬트뿐만 아니라 고어, 스플래터 씬이 난무한다. 매니아들에게 웅장하고 장쾌하며 코믹한 느낌을 주는 캐빈 인 더 우즈와 달리 <랑종>은 엽기적이고 질척 질척할 뿐만 아니라 PTSD를 남길만한 씬들을 대거 분출한다. 주인공 밍 역의 나릴야 군몽콘켓 3단 변화는 진짜 ㅎㅏ. 앞으로 그 배우 얼굴만 봐도 지릴 것 같음. 

 

이 영화에 논란이 이는 것은 선정성 때문이기도 한데 시선이 상당히 관음적이다. 특히 하혈하는 밍을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장면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지만 이 마저도 후반부 카메라맨 리벤지 곱창전시회로 회수한다. 어쨌건 회수했으니 된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지만 그 외에도 더티한 장면과 설정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이쯤 해두겠다. 

 

랑종은 기괴한 비주얼이나 끊임없이 터지는 충격 요소와는 달리 곱씹을수록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대놓고 점프스케어를 차용하고 놀래키려고 친절하게 준비시켜주기도 하는데 진지 모드의 모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장르적 재미로 즐겨보라고 프릭쇼를 들이밀다 보니 손아귀에서 제멋대로 플레이당한 느낌이 들 지경이다. 묘하게 희롱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뭣 땀시. 

 

찬찬히 뜯어보면 불쾌한 인간들의 원죄로 인해 집구석이 대대손손 작살나는 이야기로 인과응보 스토리인 데다 리벤지물이라서 그러하기도 한데 피칠갑 복수 대혈전 끝에도 후련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마음 둘 선역의 캐릭터가 없고(그게 님 캐릭터였지만 중도탈락) 빙의된 개체가 달리 해석되기도 하며 선악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훈, 착하게 살자

 

보통 호러무비에서 고문은 금발머리 깝치는 외국인이 당하는 편이지만 랑종에서의 고문은 관객의 몫이다. R18+ 청불 제한관람 영화도 거리낌 없이 보지만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영상물 중에 하나로 <랑종>을 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불 다 켜놓고 겁쟁이 상영회도 한다던데 비주얼과 정신공격에 조명 따위는 무쓸모함. 깜짝 놀래키는 영화가 아니라 준비 다 시켜놓고 예상 이상의 최악을 시전하는데 2시간 내내 서서히 초크슬램을 걸고 끝날 때까지 빼주지 않는 영화다. 목 졸린 상태 그대로 끝까지 간다. 초반 집요하게 깔아놓은 히스토리에 잔뜩 얼어붙어서 어깨 위에 돌덩이 앉혀놓고 가는데 영화 중반쯤 가면 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지만 러닝타임 1시간 더 남음. 후반 가면 지쳐서 악소리도 안 나온다. 

 

잔상이 남거나 무서워서 엄마가 보고 싶진 않다. 그냥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음. 기왕이면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좋은 분들이셨기를 바란다. 난 태국인이 아니라 안전할 것이라 정신승리하며 이만 마친다. 조상신! 잘 봐주세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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