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오브 트리스, 구스 반 산트 필모그래피 이불킥 촌극

 

 

 

The Sea of Trees, 2015

 

구스 반 산트 필모그래피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을 만한 촌극 하나를 들고 왔다. 
일본의 자살명소로 유명한 주카이 숲에 대한 영화인 데다 매튜 맥커너히, 나오미 왓츠, 와타나베 켄과 같은 어마어마한 출연진이 등장하기에 아끼고 아끼다 재생했으나(...) 칸 영화제 역대 최악의 상영작이라고 할 때 눈치 깠어야 했는데(...)

 

<엘리펀트>와 <씨 오브 트리스>의 간극에는 레테의 강이 흐른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것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구스 반 산트가 실제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인지 의구심이 들 지경의 퀄리티이기 때문에 간만에 빤스 벗고 질러본다.

 

 

 

青木ヶ原


  아오키가하라 주카이 숲에 대하여


아오키가하라는 야마나시현 미나미츠루군 후지카와구치코마치 인근에 걸쳐 있는 원시림 지대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본땅 정중앙 남쪽에 붙어있는 후지산의 북쪽인 아오키가하라는 여의도 택지면적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영화 속 매튜 맥커너히가 괴기하게 뻗은 수풀림과 늪지대를 헤치며 살아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처도 제자리처럼 느껴지던 이유는 이처럼 광활한 면적 탓이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소재가 아까운 수준으로 숲 속 방랑과 조난의 공포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아오키가하라는 일명 주카이 숲으로 불리는데 주카이는 '나무의 바다', 수해를 뜻한다. 끝없이 우거진 수풀림은 길을 잃게 만들어 한번 들어가면 돌아 나오기 어렵다고 하여 자살명소로 유명세를 타 실제로 전 세계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아오키가하라를 찾는다고 한다. 글로벌 시체 치워야하는 소방공무원들과 레인저들은 무슨 죄

 

 

 


  몰입을 방해하는 작위적인 설정


색목인이 2억만리 타국 땅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연한 태도로 성큼성큼 아오키가하라로 들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보다 어딘가 배배 꼬인 웃음이 세어 나왔다. 촌극 아닌가 싶어서. 

지성을 갖춘 성인 남성으로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무수한 방법들을 재껴두고 굳이 비행기를 타고 굳이 연고도 없는 굳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다니. 너그럽게 봐서 누군가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신을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친 것이라 떠올려봐도 아오키가하라의 10배쯤은 될듯한 미국 남부와 북부의 광활한 땅덩이와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을 떠올리면 이 촌극의 설정은 에바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의식의 흐름으로 홀린 듯 아오키가하라에 꽂혔다 치더라도 감성 충만한 예술가나 어린 남자아이도 아니고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최후를 선택할만한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로맨스를 차치하고 편의성에서 그러한데 이 작위적인 설정은 감정이입을 끝끝내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맹분이 필요하다 아이가.

 

 

 

기쁜 날에도 슬픈 조나 힐
말쑥하게 차려입고 카리스마 안광 쏴도 슬픈 에릭 바나

 

굳이 이러한 설정을 이끌고 가려면 주인공 얼굴에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했다. 강퍅하고 냉하기 그지없는 매튜 맥커너히 보다는 조나 힐이나 에릭 바나처럼 안구가 축축하고 어딘가 슬쩍 유약하고 꼬름한 캐릭터라면 좀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그럴만한 사람이 그럴만한 장소에 있는 건 받아들이는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오미 왓츠가 맡은 아내 조안이라는 인물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초기작 <21그램> 같은 작품과 복붙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가 복제 캐릭터로 '히스테리적인 면모가 있는 매너리즘에 빠진 배운 여자' 이걸 또 어디서 봤더라. 고루하기 짝이 없다.

 

 

 


  이건 아무 감동 없는 Love Story


과학과 오컬트의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기 위해 주인공 아서를 과학자로 설정한 것은 의도적이다. 초자연적 현상을 절대 믿지 않을 법한 인물이 기이한 현상과 맞닥뜨리는 체험에 대해 흥미로운 서사를 구연하고 싶었을 테지만 구스 반 산트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니다. 이 아저씨는 뼛속부터 문과임. 

 

결국 남는 건 전설의 고향 현대판 같은 개연성이 딱히 필요 없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스토리이며 무드로 조지는 일만 남았으나 구스 반 산트는 음습한 공포, 미스터리한 시선 대신 극초반 우울한 회상씬으로 졸음을 유발하고 중후반에는 신파 로맨스로 도식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훌륭한 재료들이 지천에 깔려있음에도 일절 활용하지 못하는데 굳이 배경이 주카이 숲이어야만 했는가 계속해서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인 것이다.

 

 

 

크리스 스파링, 나오미 왓츠, 매튜 맥커너히, 거스 밴 샌트

 

낡고 별 볼 일 없는 연출도 연출이지만 이 형편없는 각본을 누가 썼나 찾아봤더니 크리스 스파링이라는 작가로 2010년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한 <베리드>의 각본으로 데뷔한 작가라는데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베리드는 ㄹㅇ 숨겨진 수작인지라 머선일이 있었던 것인지(..)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죽음의 숲' 이미지에 꽂혀서 땅에 발을 내딛고 사는 사람들의 휴먼 스토리를 창조하려는 의도는 읽히나 동아시아 토속 오리엔탈리즘에서의 귀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거예요. 조상신의 은덕이라면 모를까 말쑥한 젠틀맨귀신 와타나베 켄의 꽃 환생은 뭔 지랄이야. 𝙒𝙝𝙮𝙧𝙖𝙣𝙤...

 

 

 

와타나베 켄 & 매튜 맥커너히 동서양 비엘이면 ㅇㅈ

 

배우의 연기나 극의 무드나 각본이나 무엇이 되었건 놀랍도록 비효과적이며 영리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니의 노래처럼 '이건 아무 감동 없는 Love Story, 어떤 설렘도 어떤 의미도' 없다. 


구스 반 산트는 사회 저항 물에 특화된 감독으로서 본인의 이야기이자 주전공인 운동권 이야기나 LGBT를 다룬 젠더 영화를 만들길 희망한다. 구스 반 산트표 BL물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만큼이나 격정적일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취향 전시하길 바람. 이성애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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