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데타 실화 번역본 및 해석 2편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1편에서는 베네데타의 유년기를 거쳐 커뮤니티 형태의 수녀원에 입소한 계기, 23살 때 처음 시작된 영적 체험 이후로 성녀로 추앙되어 수녀원장 자리를 꿰차게 된 5년간의 과정을 상세히 담아보았다.

2편을 이해하는데 1편은 필수. 역시나 긴 글 주의..

 

 

베네데타 실화 번역본 및 해석 1편 배경지식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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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 실화 번역본 및 해석 1편 배경지식과 비전

영화 베네데타 실화 스토리 영화 베네데타를 보고 실존 인물과 리얼스토리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자세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 직접 번역하고 시대적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 해석해 보았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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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익스체인지 & 스플렌디텔로 엔젤
Heart Exchange and Splenditello Angel

 

 

8-1. 심장 갈아 끼우기 (1619년 3월, 29세)

 

"오늘은 성 베네딕도의 날이니 황홀경에 빠져 마음대로 하라, 허락한다." 고해 신부 파올로 리코르다티는 베네데타를 불러 말했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으로 그날 저녁, 협상 도중 베네데타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녀는 전에 없는 새로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데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Saint Catherine)와 다른 인물들을 동반한 예수가 긴 머리와 긴 빨간 옷을 입은 잘생긴 청년처럼 보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베네데타는 바르톨로메아 바라보며 말했다. "악마의 짓인지 모르겠으나 저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악마의 짓이라면 제가 십자 성호를 그으면 사라질 것입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예수이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왔노라 설명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주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마음을 빼앗으러 오셨지만, 영적인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청년은 주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Giovanni di Paolo, St Catherine Exchanging her Heart with Christ

 


베네데타는 예수가 자신의 심장을 가져가시고 3일 후에 돌아와 자신의 몸에 또 다른 심장을 넣었다며 예수의 기적적인 힘으로 심장 없이 오래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르톨로메아는 나중에 베네데타가 담요를 덮는 것을 돕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심장이 있어야 할 곳의 가슴을 만져보았고 공허함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Bernini, The Ecstasy of St. Teresa

 

8-2. 스플렌디텔로 엔젤

 

베네데타의 육체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는 그녀에게 고기, 달걀, 유제품을 먹지 말고 물 외에는 아무것도 마시지 말라고 명령했다. 또한 영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으로 수호천사인 스플렌디텔로(Splenditello)를 배치했다.

스플렌디텔로 천사는 꽃 화관을 쓰고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소년으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약 2피트 길이의 녹색 지팡이를 들고 있었으며 한쪽에는 꽃, 다른 쪽에는 가시덤불을 들고 있었다. 꽃은 그녀에게 당근이며 가시덤불은 채찍이었다.

 

 

 

 

 

천사에게 체벌을 받고 이렇게 집중적으로 몸을 정화하는 일은 가톨릭 수녀와 성도들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교황 바오로 5세에게 성녀로서의 승인을 요청했고 이러한 청원을 처리한 교황 관리들이 페시아의 수녀원장에게 그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베네데타가 예수의 대리인으로 앞세운 '스플렌디텔로'라는 천사는 역사상 어디에도 기록이 없는 출처 불분명한 정령으로 이는 교황청에 의심을 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예수가 그녀를 흠모해 심장마저 털어간 뒤 3일 후에 새 심장으로 갈아 끼워줬다는 주장을 펼친 것인데 아이언맨의 파랄듐 심장 같은 소리로 현대 관점에서는 매우 허무맹랑한 작화. 이러한 주장이나 요상한 이름의 천사들과의 에피소드들은 영화 <베네데타>에서는 통째로 드러낸 스토리이지만 문헌에는 기록이 남아있다.

 

 

 

 

영혼결혼식
Marriage with Christ

 

 

9. 예수와의 결혼 (1619년 5월 20일, 29세)


예수는 베네데타에게 환영으로 나타나 일주일 후에 엄숙한 예식에서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발표한다.


제단의 윗부분은 하늘색 천으로, 오른쪽은 붉은 천으로, 나머지 두 면은 녹색 천으로 덮어야 한다. 바닥에는 그리스도와 성모의 모습, 형형색색의 꽃, 3개의 의자와 12개의 베개가 놓여있어야 한다며 예수는 예배당 장식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내린다. 

수녀원의 모든 수녀들이 촛불을 들고 예식에 참석하면 예수는 베네데타의 입을 통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씀하실 것이다.

 

 

 

 

 

베네데타는 이 예수가 진짜 예수인지 어떤 악마적인 환상인지 의심했고 리코르다티 신부에게 그녀의 환영(비전)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말하기를 주저했으나 3일 후 그녀는 밝혔다. 그녀는 결혼식의 공공성과 예수께서 평소 공개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한 작업인지가 궁금했다. 

베네데타는 황홀경에 빠져 결혼이 임박했다는 것을 털어놓았으나 정상적인 상태로 양심이 있을 때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코르다티 신부는 뜻밖에도 그녀의 결혼을 허락했고 다른 수녀들은 이미 수녀원을 예식에 맞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공동체는 엄숙하고 신비로운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진 않았기 때문에 수녀원 밖에 있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제단 천을 빌리도록 하인을 보냈다. 그들은 주변의 일부 종교 기관에 양초를 기부하도록 요청했고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베개와 꽃을 요청했다. 양초는 산타 마리아 누오바 수녀원과 산간지방 사람들이 보내왔고 곳곳에서 꽃바구니가 도착했으며 나무 의자는 페시아 수도원에서 가져왔다.

수녀들은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를 원했지만 준비 기간이나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심지어 리코르다티 신부조차도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위일체
Holy Trinity

 

 

10. 성 삼위일체 (1619년 5월 27일, 29세)

 

베네데타는 그녀에게 두 명의 수련 수녀를 천사처럼 입혀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리코르다티 신부에게 편지를 써서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하고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합창단으로 가서 꽃바구니를 집어 들고 흩뿌린 다음 양초를 켜서 각자에게 하나씩 주었다. 베네데타는 수녀들에게 무릎을 꿇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십자가상을 든 그녀는 행렬을 이끌고 성가대를 나와 정원으로 갔다가 다시 성가대를 돌아서 성령 찬미가(Veni Creator Spiritus, 오소서 성신이여 창조주시여)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단 방향으로 향을 뿌리고 여러 번 절을 한 후, 베네데타는 무릎을 꿇고 혼자서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군중은 그녀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환영에 빠진 베네데타는 너무 밝고 아름다워서 예수를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는 베네데타에게 말했다. "기뻐하라, 오늘 그대와 결혼하기 위해 왔노라" 다음은 천사와 성인의 수행원과 함께 성모 마리아가 왔다.

 

베네데타는 그가 예수인지 악마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는 악마가 아니라 그대의 신이다." 그가 대답했다. "반지를 너에게 끼우고 싶으니 손을 내밀라.", 베네데타는 "하지만 예수님,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가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고 예수는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베네데타는 반지에 키스했다. 예수는 그녀 외에는 아무도 반지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네데타 외에는 아무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이 초자연적인 남자는 설교를 통해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부이자 영적 하인으로 표현하면서 모든 사람을 향해 그녀에게 순종하라 명했노라고 다른 수녀들에게 평소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교를 마친 베네데타는 정상적인 감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합창단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성직자의 명령을 무시하고 결혼식을 보기 위해 수녀원에 온 교구장의 아내와 수다를 떨기 위해 멈춰 섰다.

 

 

 

 

 

결혼식 참가자 중 일부는 이 놀라운 광경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베네데타 외에 아무도 예수, 성모 마리아, 성도들, 반지를 실제로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성 카타리나(St. Catherine)와 예수의 결혼이 가시적인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널리 알리려는 그녀의 욕구는 진정한 성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특히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물건 따위를 보지 못했기에 수상쩍은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베네데타와 동시대 사람들은 여성으로서 그 시대의 사회적, 공공적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종교적 비전 행위를 통하는 것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리스본 출신의 수녀 마리아 드 라 비스타시온(Maria de la Visitación)도 성흔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 고위 관리들의 인정을 받아 1580년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기꾼이었음이 밝혀졌고 베네데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영혼결혼식 장면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대신 큰 종교행사(심판의 날로 추정)에서 베네데타는 페시아에 전염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마을을 봉쇄하라 병사들에게 명하는 장면 및 그녀를 의심하는 수녀들이 곤경을 겪게 되는 장면들로 대체되었다. 

샬롯 램플링이 맡은 기존 원장수녀 펠리치타(Felicita)는 영화 속에서 주요 장면마다 큰 역할을 하지만 실제는 가공의 인물로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내부고발자로 나선 크리스티나 수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이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

 

 

 

 

첫 번째 조사
The First Investigation

 

 

베네데타는 예수의 말을 빌려 베네데타 본인을 칭찬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수녀회 수녀들은 베네데타의 종교적 체험을 염려했을 뿐만 아니라 페시아의 종교 권위자들 역시도 이와 같은 사태를 염려하였다.

베네데타는 비전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운명이 그녀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처신은 거룩한 성인의 특징이 아니었는데 신의 메시지는 그들 자신보다는 주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위협보다는 그들의 인격과 행실로 추종자를 얻었다. 

결혼 준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공개도 막으려는 교황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베네데타의 영적인 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은 증명되지 않은 기적을 믿으려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교회와 세속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므로 대사 스테파노 체키 신부(Stefano Cecchi)는 영혼결혼식을 목격한 모든 이들에게 외부인과 대화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명령한다.

예식이 끝난 다음날인 1619년 5월 28일, 체키 신부는 베네데타를 직접 찾아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수녀원장직에서 물러나 있을 것을 명했고 그 자리를 펠리체 디 지오반니 구에리니(Felice di Giovanni Guerrini)에게 맡긴다.

 

 

 

 

 11-1. 성흔 면밀 조사 1 (1619년 5월 28일)

 

우선 대사인 체키 신부는 베네데타의 몸에 난 성흔이 기적의 유일한 증거였기에 성흔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한다. 예수는 전날 베네데타가 설교할 때 몸에 난 상처가 전보다 벌어져 더 크게 보일 것이라 예언했다.

 

대사는 작은 동전 크기의 말라붙은 핏자국을 볼 수 있는 그녀의 손과 발, 옆구리를 살폈다. 따뜻한 물로 씻어냈을 때 핏방울이 흘러나오는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수건으로 피를 말리자 더 많이 흘러나왔다. 베네데타의 머리 위에는 많은 핏자국이 있었고 수건에도 피가 묻어났다. 

"일요일에는 감각이 없었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거의 통증이 없지만 금요일에는 유독 통증이 심각합니다." 사순절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힌 다섯 개의 빛에 대해 말하며 성흔에 대해 항상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 했다.

 

 

 

 

11-2. 성흔 면밀 조사 2 (1619년 6월 7일)

 

대사의 첫 방문 이후, 베네데타는 비전에 빠져 고해 신부 리코르다티와 대사 체키 신부에게 각기 편지를 쓴다. 그러나 환상 이후에는 그녀가 직접 편지를 쓴 일이나 대사와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고해 신부에게 부탁한 일만을 기억할 수 있었다.

리코르다티 신부는 예수가 의사소통을 원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며 그녀의 요청을 표면적으로는 거부하였으나 체키 신부에게 그녀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전달한다. 베네데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고 체키 신부가 1619년 6월 7일에 다시 방문하여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 당황한 듯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사는 베네데타의 성흔을 다시 조사했고 몇 가지 변화를 보게 된다. 오른손 상처는 수건으로 씻고 말려도 피가 나지 않았고 머리에 난 가시관 자국도 부분적으로 치유된 것처럼 보였다. 대사는 이해할 수 없어 당혹스러웠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고 방문도 끝이 났다. 그 후로 대사 체키 신부는 5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베네데타를 14차례나 방문하게 된다.

 

 

 

 

11-3. 성흔 면밀 조사 3 (1619년 6월 14일)

 

6월 14일, 그 전주에는 거의 아물었던 상처들 중 일부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대사는 베네데타에게 상처가 잘 보이도록 머리카락을 자르고 감으라고 명했고 그녀는 옷을 정리하고 환복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다.

그러더니 갑자기 베네데타가 머리를 두 손에 쥐고 다시 뛰어 돌아왔다. "오 주여, 이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피가 얼굴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리자 그녀가 소리쳤다. 방문객들은 수건으로 간신히 피를 닦아냈으나 그녀가 몹시 고통스러워하였기에 검사가 중단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수사의 끝이 아닌 연기에 불과했다.

 

 

 

 

11-4. 심판의 날 예고 (1619년 6월의 어느 날)

 

1619년 6월, 베네데타는 리코르다티 신부에게 자신이 환상에서 다시 예수를 목도했다고 밝히게 된다. 이번에 나타낸 예수는 복수심에 타올라 아무도 자비를 구하려 하지 않으려니 그에 따른 중죄로 페시아 사람들을 벌하겠다고 위협을 했다.

베네데타는 심판의 날까지 스스로 지옥에서 속죄하며 마을을 구원할 도구가 되기를 기도했다. 예수의 노여움은 그녀의 말로 누그러지는 것만 같았고 그녀에게 항상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달래기 위한 행렬을 준비하라 대리 명했다. 리코르다티 신부는 그녀에게 예수의 형상을 앞세운 행렬을 조직하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11-5. 성녀 등극과 복직, 커뮤니티 수녀원의 신분상승 (1619년 7월)

 

7월 23일, 대사 체키 신부는 펠리체 디 지오반니 구에리니(수녀원장 대행), 바르톨로메아 크리벨리(시중들던 레즈비언 연인), 파올로 리코르다티 신부의 친척인 마르그레타 디 입톨리토 리코르다티를 만난다. 이들의 증언에는 별다른 폭로 내용이 없었다.

베네데타를 공식적인 성녀로 추앙하지 못하는 데에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녀는 항상 손을 가렸기 때문에 다른 수녀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고해 신부의 친척 마르그레타는 반지처럼 보이지 않지만 십자가가 있는 노란색 밴드를 보았다고 말한다.

베네데타가 조사실로 불려 갔을 때 그녀의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평범하고 값싼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의 윗면에는 일반 핀헤드 크기만 한 점이 5개 있었고 가운데 한 점은 짙은 빨간색이었다. 교회 조사관들은 더 깊이 조사하기 위해 열망했으나 베네데타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대답할 수 없었다.

 

 

 

 


마침내 대사 스테파노 체키 신부와 다른 조사관들은 베네데타의 환상은 꿈이 아닌 진정한 비전이며 종교적 내용은 교회의 교리와 실천에 부합한다고 결론짓게 된다. 그리하여 베네데타는 진정한 선지자로 인정받는다.

대사는 1620년 7월, 그와 페시아의 교구장이 마지막으로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부터 호의적으로 편지를 썼다. 7월 28일 교황은 이 여성 종교 공동체를 완전히 밀폐된 수녀원, 즉 공식 수녀원으로 인정되었음을 발표한다.

더 이상 미사를 보기 위해 수녀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녀로서 가난과 순결, 순종의 맹세가 엄숙히 서약된다는 점이었다. 공동체를 떠나고자 하는 수녀는 상관이나 세속 당국에 의해 머물 수밖에 없었고 마찬가지로 허가 없이 수녀원에 들어가려 하는 평신도는 처벌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녀원의 완전한 폐쇄(공식 수녀원으로 승격)가 허락된 이후 베네데타는 다시 수녀원장으로 복직되게 된다.

 

앞서 1부에 <수녀원 이야기> 챕터에서 공식 수녀원과 커뮤니티 공동체의 차이에 대해 주야장천 설명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베네데타의 야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부활
Resurrection

 

 

12-1. 외부 관리 위원회 조직 (1620년~1621년, 30세~31세)

 

베네데타가 수녀원장으로 다시 복직한 이후 약 2년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녀는 수녀원장으로서의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 같다.

단, 공식 수녀원으로 승격된 이후 수녀들이 전처럼 수녀원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게 되자 1620년 가을, 베네데타는 임무를 돕기 위한 명목으로 '외부 관리 위원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사회의 구성원들은 수녀원의 재산을 관리하고 비단과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을 도왔다.

'외부 관리 위원회'는 공식 수녀원 승격 이후로 출입에 제한이 생기자 전처럼 자유로이 외부와 접촉하기 위해 강구해낸 묘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12-2. 죽음과 부활 (1621년 3월 25일, 31세)

 

베네데타의 아버지 줄리아노 카를리니가 1620년 11월에서 1621년 3월 사이에 사망하는 일이 생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네데타는 전과 같이 비전에 빠졌는데 그녀의 수호천사 중 한 명인 테사우릴로 피오리토(Tesauriello Fiorito)가 베네데타의 죽음에 대해 예언을 한다.

천사는 수녀들을 향해 수녀원장이 지상에서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전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대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베네데타가 죽은 후에야 그녀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임과 그녀만큼 수녀원에 적합한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 말했다.

이 환영 이후, 베네데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무덤을 열고 임종을 준비하기도 했다.

수녀들은 1621년 3월 25일 베네데타의 죽음을 목도하고 다급히 고해 신부 파올로 리코르다티를 불렀다. 즉시 도착한 그는 큰 목소리로 죽은 베네데타에게 깨어날 것을 명했는데 모두가 자지러지게 놀라도록 그것은 효염이 있었다.

베네데타가 부활했을 때, 그녀는 천사와 악마, 지옥과 천국, 아버지와 다른 죽은 사람들을 봤다고 증언한다.

 

 

 



공식 수녀원도 됐겠다 성녀로 추앙도 받겠다 1절만 하지 에바싸다 일을 그르친 셈. 야욕이 화를 부른 격이다. 첫 번째 조사가 성녀로 추대하기 위한 물질적 증거를 살피는 조사였다면 두 번째 조사는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반대로 거짓의 유무를 가리기 위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조사
The Second Investigation

 

 

13. 두 번째 조사 (1622년~1623년, 32세~33세)

 

1622년 8월과 1623년 3월 사이 피렌체에서 새로 임명된 교황 대사인 알폰소 질리올리(Alfonso Giglioli)는 베네데타의 부활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하고 관리 몇 명을 파견한다.

이 조사자들은 이전보다 더 회의적이었다. 테아틴 수녀들, 파올로 리코르다티 고해 신부, 대사 스테파노 체키 신부와 달리 새로 온 교황의 사람들은 성녀로서 추대된 베네데타의 주장을 확신할 수 없었다. 

조사관들은 베네데타의 성녀답지 못한 성정과 행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었고 기적에 대한 증거 역시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그녀의 영적 체험에는 추잡하고 야한 언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글렌디텔로(Glenditello), 테사우리엘로 피오리토(Tesauriello Fiorito), 비르투디오엘로(Virtudioello), 그리고 라디첼로(Radicello) 소위 그녀의 천사라고 불리는 것들은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천상의 생명체라기보다는 악령들의 이름처럼 들렸다.

조사관들은 베네데타에게서 자비와 겸손, 인내, 순종, 그리고 보통 신을 섬기는 자로서 참된 정신에 동반되는 영웅적인 면목도 찾을 수 없었고 그녀는 다른 좋은 성자들의 본보기가 될 비범한 개인으로서는 미덕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비전의 모순점

 

 

14-1. 초기 환영에 대한 모순

 

새로운 조사관들은 베네데타의 환영에서 모순점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성모 마리아는 리코르다티 신부에게 수호천사를 가질 수 있게 허가를 받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요청 이전에 이미 그러한 천사가 그녀의 초기 환영에 나타난 점을 들었다. 

 

 

14-2. 성흔에 관한 모순

 

베네데타의 눈에 보이는 성흔 역시도 예수의 표식이 아니라 악마의 표식일 수 있는데 이는 기도의 열정이나 광야의 가혹함, 오랜 고독의 시간이 아니라 그녀가 침대에 편안히 누워있을 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수녀가 베네데타의 서재 문구멍을 통해 그녀를 염탐했고 20번 이상 큰 바늘로 상처를 복구하는 것을 목격했다.  또 다른 수녀는 그녀가 예수상에 피를 묻히는 것을 봤는데 베네데타가 거룩한 장면을 연출 시 준비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세 명의 수녀도 베네데타가 가끔 피 흘리던 발이 다 나은 듯 맨발로 수녀원을 뛰어다녔고 한 수녀는 작은 탁자에서 뛰어내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누구든 내가 뛰어내리는 것을 본 사람은 내 발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라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증언했다. 

또 다른 목격자들은 그녀가 직접 금박으로 별을 만들고 빨간 밀랍으로 이마에 고정시킨 것을 보았다. 베네데타는 예수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금빛 별을 남긴 것이라 말했다고 증언했다. 

 

 

 

 

14-3. 예수와 결혼에 관한 모순

 

베네데타가 예수와 신비로운 마음을 교환하고 그와 결혼하는 것을 두고 신성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당시 경이로움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료 바르톨로메아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겼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베네데타가 묘사한 것만큼 아름답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다소 초라해 보이는 반지가 그녀의 오른손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14-4. 아무의 영혼이나 빙의되는 몸

또한 수사관들은 베네데타가 악마에 대한 세습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에게 그녀의 부모가 얼마 전부터 빙의되어 있었다고 한다.

 

14-5. 금식과 식단에 관한 모순

고기와 유제품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베네데타는 몰래 살라미와 크레모네식 모타델라(소시지 종류)를 방해받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다른 수녀가 그것을 목격했고 증언함으로써 베네데타의 초자연적 현상 중 일부는 거짓임이 분명해졌다.

 

 

 

 

14-6. 가짜 채찍질

 

그녀가 비전 중 천사처럼 말할 때 수녀들은 그녀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행 시 쓰는 방법에 대해 터득할 수 있었다. 근처에 서 있던 수녀는 베네데타가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때리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고 채찍질을 하지 않고도 채찍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셀프 채찍질은 예수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함과 죄를 사하는 방법으로 당시에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행이 이루어졌는데 수도원은 물론이고 평신도들 역시도 이러한 고행을 자처했다.

 

 

 

 

레즈비언 관계 폭로

 

 

그녀의 시중을 들던 바르톨로메아는 더 많은 증언을 남겼다. 그녀는 베네데타의 책상에서 희석 샤프란이 들어있는 작은 놋쇠 상자를 발견했다. 이 샤프란과 베네데타의 피는 반지를 칠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라 증언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고백은 바르톨로메아와 베네데타의 레즈비언 관계에 관한 것이다.

 

 

15-1. 바르톨로메아의 주장

 

거듭되는 두 해 동안 적어도 한 주에 세 차례 저녁이면 베네데타는 옷을 벗고 침대로 가서 바르톨로메아가 옷을 벗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거짓으로 그녀를 필요한 체하며, 그녀를 부르곤 했다. 부름에 응답한 바르톨로메아가 다가오면 베네데타는 그녀의 팔을 잡고 강제로 침대에 넘어뜨렸다.

 

그녀를 안으면서 베네데타는 자신 아래에 깔아 눕혔고 마치 스스로가 남성인 것처럼 그녀에게 키스하며 사랑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녀 위에서 많은 자극을 주어 둘은 성적으로 타락했다. (*휘저었다는 표현이 쓰인다) 베네데타는 때로는 한 시간, 때로는 두 시간, 또 때로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 짓을 이어갔다.

 

 

 

 


영화 속 내용과는 달리 깁 앤 테이크가 뒤바뀐 상황. 베네데타가 남성적인 포지션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바르톨로메아는 자신은 피해자라며 고문 끝에 자백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신성모독 논란이 일었던 '성모상을 깎아 만든 남근'에 대해서는 영화적 상상으로 기록은 없다.

 

 

 

 

15-2. 베네데타의 주장

 

베네데타는 바르톨로메아를 범한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니라는 자백을 한다. 이런 짓을 한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천사 스플렌디텔로(Splenditello)가 벌인 일로 항상 베네데타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왔다고 한다. 

베네데타는 자신이 성적으로 타락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적인 행위를 벌인 일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본인은 모든 성적 행위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주장한다.

 

 

 

 

 

영화에서는 레즈비언 관계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묘사가 있으나 실제 문헌에서는 이와 같은 묘사가 최소한으로 자제되어 있다. 여성 간의 동성애는 실제였으나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불순하여 기록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수준이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영화에서의 로맨스와는 달리 연인관계라 볼 수 있는 근거가 없고 나아가 위계에 의한 성폭행 피해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있는데 바르톨로메아는 이후 평수녀로 살아갔고 베네데타는 징역형(수도원 안에서의 폐쇠적 삶)에 처해져 한쪽만 처벌받은 결과에서 그러하다. 

신 아래 절대복종과 순결서약을 중시하는 가톨릭 교리에서 베네데타의 죄에 대한 형벌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민망한 사건들을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단속(교황청 위신 보전), 그녀의 예언을 여전히 신봉하는 대중 눈치를 본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15-3. 레즈비언 수녀에 대한 기록

 

17세기 이탈리아와 유럽에서는 여성 간의 섹스에 관련한 기록은 극히 드물었다. 수녀와 남성 연인 사이의 이성 간음 사례와 남성 동성애에 대한 사례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레즈비언 관계에 대해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쇄되어 이탈리아 전역에 널리 유포되었던 안토니오 고메즈, 그레고리오 로페즈, 프로스페로 파리나치의 법률 논평에 이러한 사례가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여성이 서로 성적 만족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 조사는 1623년 11월 5일 성직자들이 <마지막 보고서>를 대사에 제출하면서 완료되었다. 이후 베네데타의 몸에서는 성흔과 반지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천사, 환상, 발현, 계시, 황홀경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베네데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녀는 더 이상 수녀원장 아니었고 새로운 수도원의 보살핌을 받으며 순종적인 수녀로서의 삶을 살았다.

 

 

 

 


수사관들은 "그녀가 행한 모든 일들, 죄로 간주되는 것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다른 모든 행위들도 그녀의 동의나 의지 없이 행해진 것으로 마귀의 일로 제정신이 아닌 동안에 이루어졌느니라."

그들은 파올로 리코르다티 고해 신부의 무능함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초례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베네데타에 대한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한 교회 조사관들은 그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하며 의지 부족을 강조했으나 최종 판결에서 베네데타가 무죄임을 반드시 입증할 필요는 없었다. 선고과 처벌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대사가 결정할 일이었다.

 

 

 

 

이후의 삶과 죽음
Later life and death

 


대사가 형벌을 결정지었을 테고 처벌이 따랐겠으나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기록해놓은 한 수녀의 일기를 제외하고는 이후 베네데타의 삶에 관한 정보는 오리무중으로 열린 결말에 가깝다. 

 

 

16-1. 베네데타의 죽음에 관한 기록 (1661년 8월 7일, 71세)

 

1661년 8월 7일, 이 수녀는 그녀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베네데타 카를리니는 18일간의 고열과 복통으로 투병 끝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감옥에서 35년을 보냈고 회개했다."

일기에 적힌 짤막한 내용은 베네데타의 두 번째 조사가 있은 지 3년이 지난 1626년(36세가 되던 해)까지 수감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아마도 단순히 행정상의 문제로 느렸을 것이다. 

당국은 그녀가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주장과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대중 또는 교회 당국에서는 베네데타 카를리니가 평신도 사이에서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수녀원의 벽 안에서 그녀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2. 처벌에 관한 예측

 

베네데타의 투옥에 관한 공식적인 결정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수감된 상황이 가혹했다고는 추측해볼 수는 있다. 교회 당국은 '육체의 죄'가 수녀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말하고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St. Teresa)의 헌법을 채택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은 평생 독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회개하고 자비와 용서를 간청하더라도 합당한 이유가 있고 방문자의 추천과 조언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동체로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는 것이 당시 유죄인 수녀에게 내려지는 형벌이다. 

간수를 제외한 다른 수녀들은 형벌을 받는 자와 대화하거나 어떤 물건도 보내서도 안 됐다. 투옥 중에는 스카풀라(천주교 펜던트), 베일(면사포)을 벗어야 하고 미사를 듣고 다른 수녀들을 따라 채찍질하던 곳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런 날에는 문 근처 식당 바닥에서 식사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죄인을 밟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 생계를 위해 빵과 물만 받아야 했다.

 

 

 

 

16-3. 흑사병과 시대적 배경

 

베네데타 카를리니의 사망 소식은 수녀원 담장 밖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페시아 사람들은 그녀에게 악명을 가져다준 사건들과 35년간의 강한 사회적 고립이 있는 후에도 그녀를 잊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1631년, 그녀의 예언적 경고가 페시아를 강타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깎아내리려는 관리들을 결코 믿지 않았다.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군중은 수녀원의 문 근처에 모여들었다. 베네데타의 시신을 보고 만지거나 심지어 성인의 유물처럼 그 일부를 가져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수녀들은 장례식이 열릴 때까지 소란과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교회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들은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베네데타를 교회 안으로 데려왔고 수녀복과 검은 베일을 입혔다.

 

 

 

 

 

'페시아를 강타한 예언적 경고'라는 것은 1600년대 전 유럽의 3분의 1을 사망으로 몰고 간 페스트의 대유행에 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Pest(plague):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 전파된 전염병으로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 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다.

 

영화에서는 페스트에 걸린 대사(Nuncio) 스테파노 체키가 군중에 의해 죽음을 맞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베네데타를 심판하기 위한 공개처형 및 화형식은 열리지도 않았다. 

 

 

 

 

17. 바르톨로메아 크리벨리 죽음에 관한 기록

 

바르톨로메아의 후기 삶에 대해 정보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1660년 9월 18일 익명의 수녀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바르톨로메아는 베네데타 수녀의 동반자였고 항상 그녀와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현세적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영적인 일에도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신성한 기도에 전적으로 전념하였다."

바르톨로메아는 속임수와 강압의 무고한 희생자로 인식되어 교회나 세속 당국의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다른 수녀들로부터 한동안 오명을 쓰고 자신의 악행을 상기시키는 일에서 견뎌야 했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수녀로서 죽는 날까지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바르톨로메아가 영화 속에서 워낙 강렬하게 그려지는 데다 주동자의 이미지라서 실화 속에서도 강력한 처벌이 따르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실제 문헌에는 평수녀로서의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해석을 마치며

 


문헌을 살펴보다 보면 베네데타의 슈퍼내추럴 비전은 매일 반복되던 고된 노동과 기도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선택받은 자'인 그녀에게 남들과 달리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어 성녀로 추앙 받음으로써 모두가 그녀를 신적 존재로 떠받들었고 수도원의 질적 승격과 원장으로서의 추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와 명예를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발언권을 영구히 가지고 싶었고 탐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짓임이 들통났음에도 교황청의 입단속으로 죽어서도 군중에게 성녀로 추앙받았던 사실이나 레즈비언 관계에서의 불온한 엽색 행각 보다도 현대로서는 도저히 납득 가능하지 않은 판결 때문이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고 금치산자 취급을 받아 다소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것인데 기관을 관장하던 남성인 고해 신부의 죄가 더 무겁다고 본 교황청의 판결은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여성이 법 앞에서도 차별받던 세상. 베네데타 실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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