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 해석 #바쿠는 본래 상상 속 동물이다

 

 

 

寝ても覚めても, 2018

 

 

아사코 출연진

 

아사코 / 카라타 에리카
토리이 바쿠 & 마루코 료헤이 / 히가시데 마사히로

 

쿠시하시 코스케 / 세토 코지
스즈키 마야 / 야마시타 리오
시마 하루요 / 이토 사이리
오카자키 노부유키 / 와타나베 다이치
오카자키 에이코 / 다나카 미사코
히라카와 / 나카모토 코지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최근 <드라이브 마이 카, 2021>로 칸 영화제 경쟁 부분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감독

원작 / 시바사키 토모카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2000년 '오늘의 사건 사고'가 데뷔작으로 2004년 영화화됐다.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 

 

 

 

아사코
줄거리 정보


!!! 스포일러 주의 !!!

로맨스 눈깔 없이 직진으로 가본다 (트창언어 주의보)

 

 

 

 

 

1. 전시회 - 화약 - 키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ㅈ대로 사는 바쿠라는 놈이 있음. 길 가다 마주친 낯선 여자 아사코라는 애한테 갑분 키스 갈김. 현대사회에서는 추행이지만 좋~다고 받아들인 아사코는 여자력 넘실대는 조신한 내숭쟁이 일녀인데 바쿠 와꾸가 박서준이랑 존똑 존잘인데다 행동력에 박력에 지려버려서 미친넘인걸 알면서도 폭 빠져 불같은 연애를 시작함.

 

 

 

 

 

오토바이 타다 자빠졌는데도 키갈.. 낼없사에 나쁜연애에 난리가 나버림

 

 

 

 

 

2. 노부유키 집 - 이별

어느 날 바쿠가 얹혀살던 친구 노부유키라는 애 집에 놀러를 갔는데 다 같이 술 마시다 갑분 빵 사러 잠깐 나갔다 온다던 새끼가 밤 꼬박 새우고 안 들어옴. 반년 후 이 새끼 신발 사러 나간다 하고 영영 안 돌아옴.. ?????

 

아사코 PTSD 와서 개같이 멸망.. 말도 없이 고향 떠버림. 

 

 

 

 

 

3. 바쿠 ≠ 료헤이

2년 후, 도쿄의 한 카페에서 알바 뛰는데 매일 커피 배달하는 주류회사 사무실에 오사카에서 전근 왔다던 남직원이 첫사랑 바쿠랑 존똑이라 패닉 옴. 자꾸 바쿠냐고 바쿠? 바쿠? 하는데 이 남자는 바쿠가 동물인 줄 앎.

 

낯선 여자가 자꾸 자기 눈 피하면서도 여지를 주고 이상한 말 왱알거리니까 남자 쪽에서 급관심이 생겨버림. 

 

 

 

 

 

4. 전시회 - 동일본 대지진 - 키스
남자 이름은 마루코 료헤이. 오늘만 사는 바퀴인지 바쿠인지와 영 딴판으로 소처럼 성실하고 일도 척척 잘하고 순발력도 뛰어난 남자로 어른한테 잘하는 유교남에 친구랑 동료도 잘 챙기고 인성까지 ㅆㅅㅌㅊ로 거의 허점이 1도 없는 킹 오브 알파메일임.

 

낼없사에 무책임한 프리터족(같은) 바쿠쨩과 여러모로 정반대 포지션의 든든한 국밥 같은 남자라고 할 수 있음.

 

 

 

 

 

껍데기가 동일한 데다 이쪽이 최상위 버전이란 걸 눈치 깐 아사코는 동일본 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흔들대는 땅 위를 가로질러 료헤이 포캣몬을 획득함. 그렇게 5년을 내리 꽁냥꽁냥 라부라부 함. 

 

똥차는 말없이 떠나가고 벤츠는 제 발로 겨와서 인생이 만개하는데...

 

 

 

 

 

5. 전남친 톱스타 된 썰 푼다

료헤이가 원래 있던 오사카로 발령 나고 아사코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넌지시 건넴. 아사코 좋아디짐.

 

but, 바쿠와 연애시절 어울렁 더울렁 함께 어울렸던 똑순이 하루요와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만나 바쿠의 근황을 듣게 됨. 바쿠는 유유자적 쳐놀며 세계 유랑을 하다 와꾸 하나로 데뷔해 인기 연예인이 되어있음.

 

 

 

 

 

6. 다시 찾아온 첫사랑

똑순이 하루요랑 공원에서 배드민턴 치는데 우연치 않게도 바쿠가 촬영 중이었음. (말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함) 연예인 벤에 탄 바쿠를 향해 아사코가 쏜살같이 쫓아가 손을 겁나 흔들어댔으나 멈추지 않고 떠나버림. 그렇게 멀리서 나 홀로 바이바이하고 료헤이와 오사카로 이주함.

 

 

 

 

 

but, 어떻게 알고 왔는지 바쿠가 신혼집으로 불쑥 찾아와 아사코 멘탈 나감

 

 

 

 

 

7. 자의적 선택

원래 아사코 룸메였던 연극배우 마야는 료헤이 직장동료로 눈치재기한 팩폭 꼰대남 쿠시하시에게 가스라이팅 당해 결혼해서 배가 남산만 해졌는데도 료헤이와 아사코를 보겠다고 집들이까지 와줌. 하루요도 함께 와서 의리 지킴. 

 

결혼에 집들이에 좋은 날이라 화기애애 그 자체인데 아사코 혼자 영혼리스 멍침.

 

 

 

 

 

먼 뷔페 같은 데서 식사 끝내고 차 마시는데 갑분 첫사랑 바쿠가 그들 앞에 떡하니 등장함.

 

아사코는 이자선일의 고민도 없이 료헤이랑 친구들 다 팽개치고 바쿠 따라서 튐. 고전 영화 <졸업>의 한 장면처럼 대책 없이 토낀다. 입떡벌 단체공황..

 

 

 

 

 

8. 아몰랑 시전
전화로 니 어디냐 돌아와라 읍소하는 친구들 깡그리 무시하고 료헤이랑 헤어질 거라면서 파워당당하게 신혼집에 지 짐도 다 버리라고 시킴. 친구들 어이 털려서 이년 손절함. 아사코 지도 휴대폰 고속도로에 내다 던지고 좋다고 꽁냥 거리면서 바쿠덕질함.

 

이와 중에도 차에서 쿨쿨 처자다 바쿠의 아가리 똥내 모닝키갈 받고 일어나 바닷가에서 잠시 쉬기로 했으나 급현타 옴.

 

 

 

 

 

9. 저기요.. 왜 그러시는 건데요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료헤이!! 이 지랄하면서 갑분 태세전환하지만 바쿠는 당황도 않고 쿨빠잉 선언. bye bye! 응 끝내. 

 

 

 

 

 

어뜨케 꾸역꾸역 아는 어부 아저씨 찾아가 불륜 고백하면서 차비 꾸고 욕 뒤지게 쳐먹지만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료헤이 찾아감. 파워철판. 공감능력 개나 줌.

 

 

 

 

 

10. 아사코는 좀비인가
그 다정하고 착하던 료헤이 인지부조화 + 인간실격 + 공황장애 와서 길길이 날뛰며 아사코한테 꺼지라 하지만 거머리마냥 찰싹 달라붙어 추격전을 시작함.

 

 

 

 

 

진심 철면피 아사코 구질구질 매달리고 살살 꼬드겨서 결국 문 열게 함.

 

비 맞았다고 갑분 옷을 훌렁 깜. 말로 비비지 못할 거 같으니 몸을 비비려나 싶은 찰나 마음 약해진 료헤이가 이제 너 죽을 때까지 못 믿을 거 같애 웅앵웅앵 대가리꽃밭 아사코는 응!응! 이러면서 영화가 끝남. 

 

 

 

 

로맨스와 논로맨스 관점

 


아사코는 로맨스에만 방점을 찍고 보면 세상 이기적이고 그지 같은 정병년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다. 물론 모든 창작물에 적용되는바 등장인물이 쓰레기라고 결과물 또한 쓰레기냐 한다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에서의 과거와 현재로 두 번씩 반복되는 장면들과 꼭 닮은 두 남자의 대칭에 대한 관점, 바쿠를 신격화 또는 유물화해서 불가항력적 존재로 놓고 해석하고도 있는 모양이다. '체호프의 세 자매나 입센의 야생오리 같은 명작을 모티브로 차용했을 것이다'라는 지적 결과물로의 올려치기가 실제로 시도되고 있음.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성을 파악하려고 여러 고전 작품들을 차용하며 무리수를 두는 것이 솔까 조금은 망상적 해석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라서 그렇겠지만. 내가 이동진이 아닌데 상업 영화를 보면서 문학적 차용까지 알아야 하나 싶고.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비극과 같은 고전적인 플롯에 해당되지 않는 러브스토리는 찾기도 어렵거니와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창작물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 창작의 영역면에 더는 새로울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로맨스를 똑 떼고, 바쿠를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에 놓고 료헤이를 경제가 붕괴된 현시점의 일본에 대칭시키면 이야기가 조금 흥미로워진다.

바쿠로 대변되는 = 버블경제 시기(80년대 소멸), 뭘 해도 성공적이던 그때, 대가리꽃밭, 프리터(알바로 먹고사는 이들), 화약, 불꽃놀이, 막살아도 톱스타(경제 기득권), 미래 생각하지 않아도 앞길 창창

료헤이로 대변되는 = 경제불황(90년대 중반~현재), 잃어버린 30년, 고학력 고능력, 동일본 대지진(집단 공황), 더러운 강, 성과에 목을 매는 직장인(경제 유동층), 죽을 둥 살 둥 살아도 앞날 막막

 

현세대가 보기에 신기루 같았던 버블경제 시기. 끊임없이 그 시기를 동경했고 따르려 했으나 꿈에서 깨어보니 현타 맞은 상황. '바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을 이어나가 보겠다. 

 

 

 

바쿠는 본래 상상 속 동물이다

 

 

꿈을 먹는 요괴 바쿠 獏(ばく)

 

 

일본에는 수도 없이 많은 요괴와 같은 잡귀 설화들이 존재하지만 바쿠는 사람의 꿈을 먹고사는 요괴로 여기서 꿈은 장래와 희망을 뜻하는 것이 아닌 수면을 말한다. 그래서 악몽을 꿀 때면 바쿠에게 꿈을 바치기 위해 머리맡에 바쿠 그림을 두고 자거나 배게로 만들어 썼다고 하고 21세기에도 이 미신을 믿는 사람이 꽤 많다.


영어 'Dream'과 한국에서의 '꿈'은 수면과 희망을 동시에 내포한다. 将来の夢(장래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일어 夢(유메, 꿈 몽)의 뜻 역시 그러하다. 이렇듯 다의어의 의미에서 '꿈을 먹는 사람'으로서 바쿠를 설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멜로디의 바쿠

 

 

꿈을 먹는 요괴를 형상화한 바쿠 캐릭터는 Z세대에게 헬로키티와 같은 <부탁해! 마이멜로디>에서도 등장한다. 산리오 사에서 2005년에 선보인 이 만화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그 인기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바쿠는 선캐 마이멜로디의 대척점에 있는 악역 쿠로미의 동료이며 운송수단이자 아랫것으로 소년소녀의 꿈을 이뤄준다고 꼬드겨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리는 일을 도맡는다.

 

 

 

 

 

이렇듯 청년세대를 그려낸 <아사코>의 '바쿠'라는 이름의 설정은 MZ세대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마멜열풍 덕분에 꽤나 직관적인 명칭으로 다가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30년

 

 

1인 2역을 맡은 남자 주인공은 시대를 대변한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반면에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아사코'라는 여성 캐릭터는 시대 퇴행적이며 고루하기 짝이 없다. 

떠올려보면 <해피아워>에서도 굳이 먼 곳까지 나들이 간 절친 4인방이 집에서 손수 싸온 도시락을 나눠먹는 장면에서 일본의 특유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나 고루한 여성관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고개가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K의 계곡알탕 한방능이백숙 세계관에서는 구태여 도시락통을 지고 가는 J의 컬처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여성의 존재는 남성에게 순종적이고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남자의 고나리질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꿀 벙어리가 되는 모습 등이 담겨있는데 이것 역시 J컬처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낡은 여성관을 탓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수동적 자아를 탈피하는 과정이랍시고 묘사된 부분이 '무책임'과 '탈주',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민폐를 끼치면서까지의) 자신의 선택'인데 본인에게 절대적으로 잘했던 선녀 같은 남자(료헤이)에게는 앞통수를 쌔려 박아 버리지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놈(바쿠)에게는 한없이 상냥한 안녕을 고한다.

강약약강이 지리는 부분으로 다시 받아줄 것만 같은 료헤이의 호갱력으로 정신승리해버리는 것처럼 비쳐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서 화풀이한다'의 전형처럼도 보이는데 타인의 고통을 먹고 자라 '러브 마이셀프' 감행하는 성장형 캐릭터처럼 보인다. 이런 설정 때문에 후반부 아사코의 급변하는 감정과 이후의 집요한 구애 장면이 싸이코드라마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사코의 영어 제목이 <Asako I & II>인 것과 극 중 전시회의 이름이 'Self & Others(자아와 타자)'인 것을 비루어 보아 이런 구식의 여성관 조차도 원작자인 시바사키 토모카와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가 의도한 바는 아닌지 탈출 버튼이 있긴 하다.

 

좀 섬뜩한 관점으로 보면 분리된 자아는 도플갱어처럼 닮은 바쿠와 료헤이 각기 두 사람이 아니라 실은 아사코로 전시회 사진 작품 속 쌍둥이처럼 다중인격으로 상대에 따라 취사선택한 것은 아닐지. 모든 데칼코마니적 설정을 그녀를 중심으로 두고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풍성해진다.

 

여기에 일본 버블경제 수혜자인 경제 기득권 세대(바쿠)와 잃어버린 30년의 청년세대(료헤이)를 대하는 사회적 시선(아사코의 태도)으로 보아도 흥미롭게 읽힌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일본의 창작물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잃어버린 30년 운운하며 경제부흥기 추팔하고 진일보하지 못하는 사회 탓하기 이전에 본인들 EGO부터 들여다보는 게 어떨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창작자들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멈춰서 있다면 고루한 여성관만큼이나 고루한 사회를 탓하기에는 사회적 고민이 너무 없는 것은 아닌지. 마치 90년대에 멈춰버린 콘솔게임 시장처럼 아키하바라의 전경처럼 멈춰있음을 그들은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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