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탄 해석 #호빵맨 알렉시아는 터미네이터인가 (스포O)

 

 

 

TITANE, 2021

 

 

 

티탄 출연진

 

알렉시아 / 아가트 루셀

뱅상(아드리앵의 아버지) / 뱅상 랭동
*<아버지의 초상>으로 2015년 68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은 배우

쥐스틴(피어싱녀) / 가랑스 마릴리에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 데뷔작 <로우>의 주연

감독 / 쥘리아 뒤쿠르노
수상 / 202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두 번째 상업영화이다.

 

 

 

 

티탄 줄거리 정보 및 해석
!!! 스포일러 주의 !!!

 

 

 

티타늄 호빵맨 알렉시아

 

알렉시아는 어린 시절 차 안 뒷좌석에서 발을 퉁퉁 구르고 시트를 차며 운전하던 아버지를 방해하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나 뇌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 우뇌 부위에 티타늄을 박아 넣음. 이런 수술이 실제 하는지 모르겠으나 설정상 그러하다.

 

가상의 사이보그 마냥 우뇌 대신 티타늄을 박은 것인지 두개골 함몰로 인한 미용성형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꼬름한 상태를 봐선 뇌손상이 확실해 보임. 

 

 

 

 


위치상 호빵맨과 똑같이 우뇌가 박살난 설정으로 우뇌의 역할은 위치 파악, 감각 능력, 예술적, 예체능적인 능력이라고 하는데 영화 속 티타늄 장착한 알렉시아는 댄서라는 설정으로 이게 머선 설정의 오류인지 싶기도 하다.

 

 

 

 

 

성인이 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남성들로 그득한 모터쇼에서 광기의 섹시댄스를 추는 레이싱걸로 활약하며 팬을 모은다. 그녀의 골수극렬빠 남성팬은 싸인을 받기 위해 접근하고 선 넘는 스킨십에 빡댕이 돌아버린 알렉시아는 머리에 늘 꽃고다니는 비녀로 푹찍 살인을 저지른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수긍이 가능 대목이지만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공황이 오는데 팬을 죽이더니 갑분 차량과 야스 후 아이를 잉태한다. 어리둥절.. (???)

 

 

 

 

첫 살인 이후 곧바로 붙는 장면이라 사실 처음엔 쾌락살인에 중점이 맞춰진 것인가 싶었지만 나중에 이 장면이 교미.. 였구나 퍼즐이 맞춰지기도 한다. 자동차 주제에 임신을 시킨다고....? 하겠지만 설정이 그러하다. 

 

 

 

<카운셀러> 카메론 디아즈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3년 영화 <카운슬러>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자본주의 야스였다면 이건 일렉트로닉 야스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지중해 연쇄살인 용의자

 

 

알렉시아는 동종업계의 한 여성(가랑스 마릴리에)과 므흣한 시간을 보내던 중 꼭지피어싱에 과도하게 집착해 쌉정색 당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갑분 임신 테스트를 하는데 양성이 나와버린다. 늘 꼽고 다니는 흉기인 비녀로 셀프낙태를 시도할 요량처럼 보이는데 당연히 피만 묻어 나온다. 그것도 석유나 엔진오일처럼 검은 피.

 

아니 프랑스 대체.. 배움이 없다 쳐도 21세기에 이 정도의 무지한 인간이 있나 싶고 티타늄 뇌가 시켰다 보기에는 몸의 고통을 못 느끼는 설정도 아니고 세상 쓸데없고 역겨운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를 끌까 말까 200번 고민함.

 

 

 

 

 

임신한 건 어디까지나 지탓이거늘 갑분 분노장 환자가 되어 엄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시전하는데 썸 타던 피어싱녀 쥐스틴을 포함한 집안에 있던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을 추가로 잔인하게 살해한 뒤 현장을 뜬다. 곧이어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방의 문을 잠그고 불을 질러버린 뒤 도주한다.

 

 

존속살인 나아가 연속살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영화 내에서 전혀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저 폭주기관차 같은 흉악한 이미지만이 남는다.

 

후반부 이야기와 합치해보면 알렉시아는 제대로 된 사랑과 보살핌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려지는데 유럽에서 32세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잉여딸.. 그것도 그녀의 부모님이 린치를 가했다든지 폭력적인 사람들이었다던지 이런 과거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일절 없기 때문에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그녀에게 살인 용의자로 수배령이 내려지고 도주를 모색하던 와중 10년 전부터 실종신고가 되어있던 남자아이 '아드리앵'이 되어보기로 한다. 머리를 짧게 자른 뒤 코를 부러트리고 가슴을 붕대로 납작하게 만든 알렉시아. 헐레벌떡 아들을 찾으러 온 아버지 뱅상은 경찰에게 '내 아들 얼굴도 못 알아볼 것 같으냐' 윽박지르고 그녀를 데려간다.

 

 

 

 

불타는 아이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은 소방관 대장으로 막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한눈에도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상남자 타입의 중년 남성으로 관리가 잘 된 근육질의 겉모습과 달리 당뇨처럼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병마에 시달리는 듯 보인다. 

 

제 스스로 아비를 찾아놓고 도망칠 궁리만 하는 아들, 아버지 뱅상은 익숙지 않고 투박하지만 최대한 다정하고 따뜻하게 아드리앵로 위장한 알렉시아를 보살피려 애쓴다. 사회성이 전혀 없고 말 한마디 없는 아들이지만 소방대원들에게 소개해주고 현장에도 달고 다닌다.

 

 

 

 


모의 화재진압 현장에서 한껏 웅크린 채 불길 속으로 타 들어가는 아이의 환영을 보는 뱅상이 등장하는데 이는 몇 가지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다.

 

 

  1. 사고사 위장 (아들은 이미 죽었다)
10년 전 같은 상황에서 사고로 아드리앵을 잃었지만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죄책감, 혹은 법의 심판이 두려워 사고를 묵인하고 스스로 아들의 실종신고를 냈을 경우. 이미 아드리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받아주었다는 가설.

선한 시각으로 보자면 관사에 살고 있다는 설정이니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다가 어처구니없이 사고에 의해 사망한 경우와 정반대로 악한 시선으로 보자면 존속살인 또는 사고사 이후 사체유기의 방법으로 완전범죄를 위해 모의 화재 시설을 이용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2. 영화적 문법
'불타는 아이'는 과거 아들을 잃은 죄책감으로 정신적인 문제와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 뱅상의 오랫동안 반복된 환각으로 아들을 찾은 이후에도 똑같은 환각에 시달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당신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예시에 방점을 찍는 경우이다. 망상장애와 샤머니즘적 접근, 직감을 한대 아우르는 장면으로서 영화적 문법과 핍진성을 위해 삽입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3. 연쇄살인마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고 가슴에서 아이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불타는 아이'라는 상징성으로 표현한 경우이다. 

이 장면 바로 이후에 나오는 '부자 욕실 격투신'을 보면 뱅상은 비녀를 두고 "뭐 하게? 뜨개질하게?"라면서 흉기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미 알렉시아의 존재를 알고도 아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빠라는 존재

 


옷장에서 드레스를 꺼내 입고 임신한 불룩한 배를 바라보다 인기척에 숨는 알렉시아에게 아드리앵의 어린 시절 드레스 입은 사진을 보여주는 아버지, 현장에서 위급한 순간 마카레나나 맞춰 심폐소생술을 알려주는 아버지, 함께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녀. 점차 이들의 관계는 친밀해진다.

 

 

 

 

 

주사를 맞고 이미 죽어버린 듯한 뱅상을 '아빠'라고 부르며 안는 장면은 관계의 전환점으로 보인다. 알렉시아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묻따를 실현하는 뱅상을 아버지로서 받아들이기로 한 장면이다. 그녀가 아드리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대원의 입을 막고 젖가슴이 들통난 상황에서도 뱅상은 그녀의 아버지를 자처한다.

 

 

 

 

 

오래전 집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아내에게 아들이 돌아왔다며 알렉시아를 소개해주는 장면이 있다. 아내는 식사자리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저 빈방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 옷에 장난감에 생지옥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이후 방에서 헐벗은 나신의 알렉시아에게 다가와 어떤 역겨운 이유로 빌붙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남편을 돌봐야 할 것이라며 매섭게 쏴 붙인다.

 

 

 

 


이 장면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아내 역시 아드리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이 보인다. 즉, 남편이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제 겨우 안정을 찾은 그에게 더는 절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집 나간 아내를 굳이 불러들인 뱅상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한데 자신은 이제 모두 포기했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괜찮아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줄 목적으로 아내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함이다.

 

 

 

 

내가 있어

 


아드리앵으로 살면서 어설픈 춤만 추다가 소방차에 올라가 내추럴 본 댄서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알렉시아. 이후 또 한 번의 소방차와의 야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전과 달리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한다.

한편, 아버지 뱅상 역시도 알렉시아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는 있으나 고통이 끝나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가슴에 붙을 붙인다.

 

 

 

 


출산에 임박한 알렉시아는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고 불에 그을린 가슴을 베고 눕는다.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받는 부녀. 하지만 알렉시아의 불안정한 사랑의 표현은 뱅상을 소스라치게 만든다. 자신을 떠나지 말라며 간청하는 알렉시아의 출산을 돕는 아버지.

 

 

 

 

 

티타늄이 튀어나오면서 배의 살갗이 찢어진 알렉시아의 자궁에서 티타늄 척추를 가진 기이한 아이가 태어나는 출산 장면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매우 충격적이고 그로데스크 한 비쥬얼.


그러나 곧 괴물 같은 아이를 배 위에 올려 안고 "내가 있어"라고 말하는 뱅상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영화 타탄 리뷰
호빵맨 알렉시아는 터미네이터인가

 


영화 <타탄>은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찐한 부성애에 관한 영화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지려는 어른으로서의 자세와 그의 숭고함을 전시하는 영화로 느껴져서 그러하다. 

 

티타늄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불이며 아버지가 불을 진압하는 소방관이라는 설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고 받아들이는 뱅상 씨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굳이 페미니즘적인 면을 따지고 들자면 레이싱걸로 성상품화의 대상에서 반강제적 톰보이로 거듭나는 설정,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 뱅상이 성별을 중요치 않게 생각한다는 점과 같이 각각의 요소는 있지만 걸스 캔 두 애니띵은 살인에서나 보여줬지 대체 어디가 페미니즘 적이냐는 것에서다. 반대로 빈번한 나신 전시는 해석에 따라 착취적으로 보이는 경향도 있다.

 

 

 

 


극 초반부에서 자기 몸에 대한 무지의 행동이나 인간성 말살한 폭력적인 장면들은 상당한 반감을 일으킨다. 굳이 잔인하고 충격적인 설정(.. 거의 지뢰)이 없었더라도 후반부의 메시지가 오롯이 와닿았을 것 같다. 

망가져 수리한 건 머리통인데 복부가 티타늄으로 덮여서 출산 시 살갗이 북북 찢어져버린다는 것이 몹시 괴랄하지만 차량과 관계해서 애가 잉태됐다는 설정부터가 빻음 그 자체로 공상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화적이기도 해서 토 달기를 포기했다. 


겉모습은 사람으로 둔갑해 있지만 안은 티타늄으로 채워진 AI 휴머노이드의 역습이자 언캐니 밸리 같은 불쾌함이 전반부를 이룬다면 후반부는 착한 AI 휴머노이드로 거듭나는 내용으로 애초 알렉시아가 터미네이터식의 여성봇이라 여기면 불쾌함이 살짝 삭감되는 효과가 있다. 찝찝한 이미지를 도려내려면 이렇듯 정신승리해야 함. 

<타탄>은 역겨우면서도 경이롭고 신비한 체험 같은 프랑스 영화로 <스플라이스>나 <경계선>에서의 기괴한 출산과는 또 다른 못볼꼴로 이만 해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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